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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2. 7. 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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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의 과정에서 독일교회의 감동적인 헌신이 있었다

평화열차는 분단의 벽을 넘는 한반도 평화운동이다

무엇을 기록하고 남길 것인가. 중요한 취재를 앞둔 기자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관련 자료, 거점지역에 대한 역사적 기술 등을 검토했다. 긴 기차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책을 가방에 넣어야 한다. 작은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데 책만 한 것은 없다.

충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준비를 마치고 아침이 밝았다. 답사팀은 공항에서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보내게 될 16박17일의 여정. 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났다.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해는 뉘엿뉘엿 스카이라인 뒤로 숨었다. 도로변 곳곳에 무성하게 나무들이 솟았다. 베를린의 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세련되고 품격 있게 짙어졌다. 동행이 있는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평화열차 답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독일 사람들은 통일의 경험을 자랑스러워했다.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사상가들을 높이 평가했다. 독일 지식인들은 고매하고 정신적이며 난해한 글쓰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역사를 대하는 방식, 정치 체제, 건축양식 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는 진지하고 정중했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반성하면서 극복했다.

독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과 닮았다. 독일은 2차 대전 패전 후 분단을 경험했고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다. 한국은 분단과 6.25 전쟁을 경험한 후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차이가 있다면 독일은 1990년 통일을 성취했고, 우리는 여전히 정전협정 상태라는 것이다.

답사팀은 1960년대 파독 간호사 출신 장로님을 만났다. 40여 년 전 꽃다운 나이에 고향을 떠나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은 되돌아가지 않고 남았다. 독일 교회 성도들은 누군가 시작한 ‘우리의 소원’을 구성지게 합창했다. 통독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먼발치에서도 통일 한국을 그리고 있었다. 분단의 벽을 넘는 평화열차가 성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다.

평화열차에 대해 소개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기자라면 당연히 던져야할 질문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질문이 한가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민족주의적인 감수성이 밀려왔다. 서로 말없이 눈치를 보긴 했지만 눈물 한 방울씩은 필요했다.

답사팀은 16박17일 중 8일을 기차 안에서 보냈다. 긴 시간 기차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호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를 이 짧은 졸고에 다 담을 수 없다. 이번 일정에서 답사팀은 독일 러시아 등 해외 교회와 한인 교회 성도들의 평화열차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다.

안타까운 것은 보수 교단 해외 선교사들이 보여준 차가운 태도다. 이들은 먼 길을 떠나온 답사팀의 평화열차에 대한 설명조차 거부했다. 일부 지역 선교사들은 공식적으로 평화열차 반대를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WCC 총회를 대하는 보수 교단의 태도, 평화 통일운동을 보는 왜곡된 관점이 평화열차 답사팀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되레 답사팀을 격려한 것은 통일의 경험을 가진 독일 교회였다. 독일 개신교협의회 폴 오펜하임 아시아 담당국장은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모든 의심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답사를 두고 교계 한 목사는 “평양은 지나왔느냐”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실현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독일 화해교회 이야기가 떠올랐다. 베를린 장벽 옆에 세워져 있던 화해교회는 관측병의 시야를 가려 총을 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85년 강제 철거됐다. 만프레드 피셔 목사는 무너진 교회 터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5년 동안 예배를 드렸다. 통일 후 독일은 피셔 목사의 기도에 응답했다. 교회 터를 보존하고 교회 잔해를 모아 기념 교회를 건축했다.

피셔 목사는 지금도 매일 정오가 되면 분단의 벽을 넘다가 희생당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피셔 목사는 “독일이 통일되기 1년 전만해도 통일이 빨리 될 것이라고 했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통일은 생각지도 못했던 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면서 “평화열차는 갑자기 찾아올 통일을 준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