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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11> 국내 방송사 카라스키야戰 KO패 우려 중계 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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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7. 9. 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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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에게 들은 어릴 때 이야기다. 누나 등에 업혀 미군 지프에서 던지는 초콜릿을 받으려다 개천에 떨어졌다. 누나가 내려가 보니 하나도 안 다쳤다. 누나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말을 안 했는데 이를 본 사람이 엄마에게 얘기해서 크게 혼났다고 했다. 

조금 더 자라선 신문 배달하는 동네 형들을 따라 겨드랑이에 신문을 끼고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라’를 부르고 다녔단다. 얼마나 까불었는지 서울 돈암동에 살 때 군인이던 외삼촌이 집 앞에 세워 놓은 트럭에 동생과 올라 장난치다가 큰 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것저것 만졌는데 트럭이 움직이더니 내리막길로 달렸다. 그래서 남의 집을 부숴버렸고 이로 인해 신문 사회면에 처음 이름이 올랐다. 개구쟁이였지만 누나는 항상 내 편이었다. 시합을 앞두고 나를 격려했다. 

“수환아 넌 이겨, 엄마가 너를 낳을 때 얼마나 폭격이 심했는 줄 아니. 그런 속에서도 넌 살았어.” 

엄했던 할머니, 그 할머니가 그토록 열심히 성경을 읽으셔서 그런가, 비참하게 맞고 쭉 뻗어버린 시합은 없었다. 아니면 신의주 제2교회를 섬겼던 할아버지의 헌신이 4전5기 시합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3번을 다운당하면 자동으로 KO패 하는 룰이 있었다. 카라스키야 측은 룰 미팅에서 ‘무제한 다운 룰’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어차피 KO로 끝날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판정을 원치 않았다.

당시 파나마엔 세계 복싱영웅인 로베르트 두란 선수가 있었다. 카라스키야의 인기는 두란을 능가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세계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다들 기대했다. 나는 그들 파티에 제물이었다.  

파나마는 더웠기 때문에 한 체급 올린 체중 감량엔 무리가 없었다. 남은 1주일은 시합 때 있는 힘을 다해 싸울 수 있도록 말수조차 줄여야 한다. 그때 한국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시합 1주일 전인 11월 20일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타이틀전에서 도전자 김태호 선수가 상대 선수 세라노를 다운시키고도 10회전에서 KO로 졌다고 했다.  

또 다른 소식도 들렸다. 같은 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루한 선수가 자모라를 10회 KO로 이겼다는 것이다. 파나마는 복싱의 나라였다. 사파타, 루한, 두란에 이어 카라스키야까지 세계 챔피언이 된다면 파나마는 세계 챔피언 4명을 보유한 복싱 강국이 되는 것이다. 

복싱 연령으로는 늙은 나이 27세, KO율 30%인 내가 그들 잔치의 제물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합을 중계방송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나 마나 뻔한 KO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싱을 좋아하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1주일마다 한국선수가 KO로 지는 것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김태호 선수의 시합을 중계했던 TBC 박병학 아나운서와 김재길 체육국장은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홍수환 시합은 꼭 중계하겠다, 홍수환이 지면 국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온 국민이 복싱을 좋아했다. 세계 복싱계의 동향은 물론 선수 랭킹까지 줄줄 외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판치라인’이라는 복싱 전문지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카라스키야전 중계가 결정됐다. 계체량도 통과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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