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2006-06-22|31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507자
하나님의 은혜로 쾌유되길 바랐던 소연이는 토요일에도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소연이 어머니가 회개하고 함께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도,나도 거의 포기 상태였다.
교회학교 아이들을 위해 부활절 달걀을 준비하면서 나는 소연이 것도 만들었다. 부활절 아침예배를 드리고 달걀 바구니를 들고 병실로 향했다. 걱정이 됐다. 의식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소연이가 “계∼란”이라며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병원은 전도의 ‘황금어장’이다. 아픈 사람에게 하나님은 가장 큰 위로가 된다. 누구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인다. 거기에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낫게 되면 그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주님을 영접한다.
병원뿐 아니라 무의촌 의료봉사(1989년부터)를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쉽고 절실하게 하나님을 만난다.
충남 서천 지역의 한 교회를 근거지 삼아 의료 봉사 활동을 나갔다. 중풍으로 1년 넘게 꼼짝 못하고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방문해달라는 전도사님의 부탁이 있었다. 할머니가 혼자 간호를 했기 때문에 목욕 한번 못했다고 했다. 우린 먼저 수염을 깎은 뒤 수술용 가위로 머리를 깎아드렸다. 물을 데워 물수건으로 몸을 씻기고 오래 누워 계셔서 생긴 욕창을 소독하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드렸다.
“아이구,너무 고마우이. 아는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내게 잘 해주는 거요?”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저희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요. 예수님은 저희보다 할아버지를 더 잘해 주실 거예요. 할아버지도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날,그 할머니가 삶은 밤 한 냄비를 들고 찾아오셨다.
“고마우이. 당신들이 말한 그거 있잖아. 예수라던가? 나도 믿을 테야.”
6개월만에 그 교회 전도사님을 만났다. 할아버지 임종예배를 드렸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천사가 보인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는 11년간 몽골 선교를 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연세친선병원을 세우는 데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터키 지진 현장에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카자흐스탄 태국 이라크 북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내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래서 ‘터지면 간다’는 별명도 얻었다. 그 많은 곳을 해외 단기선교나 해외 재난 봉사라는 이름으로 갔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였다.
태국에 갔을 때였다. 한 추장의 손녀가 1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찾아왔다. 탈수 때문에 링거를 놔줘야 했다. 그러나 그날 따라 챙겨간 링거액이 없었다. 물이라도 마시면 나을 터였지만 물이 안 넘어간다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대원들과 함께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부족의 추장이었지만 딸이 죽게 생겼으니 기도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믿음으로 다시 물을 먹여보라고 했다. 그러자 물이 안 넘어가서 못 먹겠다던 아이가 큰 대접으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추장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더 큰 감동은 터키에서 일어났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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