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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양수 <3> 중학교 첫 시험부터 문제지 글자 안보여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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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6. 3. 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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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대를 안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좌절해야 했다.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에서 교과서를 받았는데 과목 수가 늘어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교과서의 글씨가 너무 작았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의 글씨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글씨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또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도와줄 친구도 선생님도 없었다. 나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거의 첫 시험이었던 것 같다. 문제지를 받았는데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쇄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감독 선생님께 문제지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새로 받은 문제지도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인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시험지 글자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빠진 것이었다. “이제 끝이구나. 여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다. 순간 두 아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살아온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일단 대충 시험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닥쳐올 인생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버거운 삶을 그려봤다. 


지금은 여건이 좋아져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컴퓨터 음성지원을 통해 공부할 수도 있고 ‘점자정보단말기’라는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저시력 학생들은 휴대용 확대 독서기나 고정식 확대 독서기를 사용해 책을 읽을 수 있다. 본인에게 잘 맞는 보조기기를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30여년 전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때였다. 


공부를 못해 성적이 떨어지자 주변에 소위 불량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태권도 등을 배웠고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름 몸은 탄탄한 편이었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게 없자 싸울 때는 겁도 나지 않았다. 소위 ‘학교짱’과 주먹다짐도 벌였다. 그러면서 나도 불량학생이 돼 갔다. 성적은 꼴찌에서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런데 막상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걱정이 앞섰다. 공부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이러다 갈 곳이 없으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구석에 박아뒀던 교과서를 다시 꺼냈다. 친구들은 그래 봐야 소용없다고 비웃었지만 난 절박했다. 시력이 나빠 기술을 배울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답답했다.  


당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연합고사를 치러야 했다. 연합고사에서 점수가 나쁘면 거리가 먼 고등학교나 야간 고등학교에 가야 했다. 글씨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연합고사는 양호선생님이 문제를 읽어줘서 보았다. 


결과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었다. 인문계 합격선 안에 들은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중학교에서는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자체로 한동안 화제에 올랐다. 나는 당시 동네에서 명문으로 통하던 서울 우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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