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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양수 <3> 중학교 첫 시험부터 문제지 글자 안보여 절망


많은 기대를 안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좌절해야 했다.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에서 교과서를 받았는데 과목 수가 늘어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교과서의 글씨가 너무 작았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의 글씨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글씨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또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도와줄 친구도 선생님도 없었다. 나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거의 첫 시험이었던 것 같다. 문제지를 받았는데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쇄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감독 선생님께 문제지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새로 받은 문제지도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인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시험지 글자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빠진 것이었다. “이제 끝이구나. 여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다. 순간 두 아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살아온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일단 대충 시험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닥쳐올 인생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버거운 삶을 그려봤다. 


지금은 여건이 좋아져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컴퓨터 음성지원을 통해 공부할 수도 있고 ‘점자정보단말기’라는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저시력 학생들은 휴대용 확대 독서기나 고정식 확대 독서기를 사용해 책을 읽을 수 있다. 본인에게 잘 맞는 보조기기를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30여년 전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때였다. 


공부를 못해 성적이 떨어지자 주변에 소위 불량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태권도 등을 배웠고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름 몸은 탄탄한 편이었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게 없자 싸울 때는 겁도 나지 않았다. 소위 ‘학교짱’과 주먹다짐도 벌였다. 그러면서 나도 불량학생이 돼 갔다. 성적은 꼴찌에서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런데 막상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걱정이 앞섰다. 공부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이러다 갈 곳이 없으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구석에 박아뒀던 교과서를 다시 꺼냈다. 친구들은 그래 봐야 소용없다고 비웃었지만 난 절박했다. 시력이 나빠 기술을 배울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답답했다.  


당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연합고사를 치러야 했다. 연합고사에서 점수가 나쁘면 거리가 먼 고등학교나 야간 고등학교에 가야 했다. 글씨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연합고사는 양호선생님이 문제를 읽어줘서 보았다. 


결과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었다. 인문계 합격선 안에 들은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중학교에서는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자체로 한동안 화제에 올랐다. 나는 당시 동네에서 명문으로 통하던 서울 우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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