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수코타이전을 마친 뒤 얼마 지나 MBC TV프로그램 ‘챔피언 스카웃’이 수코타이전을 방송했다. ‘홍수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세계랭킹에 들어갔다.
나는 동양 챔피언이었으나 세계랭킹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수코타이는 동양 챔피언은 아니었지만 세계랭킹 6위였다. 마지막 8회전에서 사력을 다해 KO로 이긴 결과 나는 세계랭킹 4위가 됐다.
1973년 2월 13일 얼굴의 멍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수색 30사단 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6주 훈련을 받고 대전육군병참학교에서 8주 후반기 훈련을 받았다. 14주 훈련을 마친 후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에 배치됐다. 육군 일등병, 부대는 수도경비사 제5헌병대대 본부중대였다.
수경사에서 몸무게를 재고 깜짝 놀랐다. 체중이 68㎏이었다. 14주 동안 훈련을 받으며 10㎏이 쪘다. 그즈음 훈련 기간 동안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던 매니저가 찾아왔다. 시합 일정이 있다고 했다. 이노우에라는 일본 선수가 상대인데 계약 체중이 55㎏이라고 했다. ‘아, 13㎏을 어떻게 빼나!’
별수 없었다.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체중 감량을 하고 시합에 나가서 3회 KO승을 했다. 입대 후 첫 승리였다. 당시 수경사에서는 시합에 나갔다 지면 영창에 갔다. 아니면 유격 훈련을 받으러 가야 했다.
당시는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없었다. 또 아마추어 복싱은 몰라도 프로복싱을 키우는 군부대는 없었다. 나는 프로선수였기 때문에 육군 일등병 신분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 밴텀급 타이틀전에 못갈 뻔했다.
나는 상대 선수의 지목을 받았다. 당시 세계 밴텀급 챔피언이 된 남아공의 아널드 테일러가 나를 첫 지명 도전자로 택했던 것이다. 반공교육을 이틀 받고 일본으로 가서 남아공 입국 비자를 받은 후 홍콩, 실론, 세일추일스 군도,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시합 장소인 남아공 더반에 도착했다.
장장 35시간을 이동했다. 비행기를 타고 남아공까지 가면서 반드시 챔피언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여행이 길면 길수록 각오가 더 굳어지는 듯했다. 오기가 생겼다. 김기수 선배 이후 7년 만에 세계타이틀전을 하러 가는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권투위원회에서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인이 관심을 가졌다. 김준호 선생님 집에 세 들어 살던 미국인 선교사 세 명이 공항에 나왔다. 또 엄마와 큰형 동생들이 배웅 나왔다.
테일러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더 강해졌다. ‘테일러를 이기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내가 이겨서 귀국한다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더반에 도착했다. 35시간은 금세 지나가버렸다.
김준호 선생님과 나는 더반에 있는 팜비치 호텔에 묵었다. 그곳에서 테일러의 시합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구부정한 큰 키에 스트레이트가 압권이었다. ‘계속 움직이자. 그것이 상대를 죽이는 거다.’ 김 선생님과 나는 초반부터 적극 공세에 나서기로 작전을 세웠다.
드디어 시합 날. 나는 처음으로 야외특설 경기장에서 경기했다. 그곳에서 우리 원양선원들도 만났다. 한쪽 링 사이드를 점령하다시피 앉아 있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는 이들을 보면서 김 선생님에게 얘기했다. “선생님, 내가 오늘 죽더라도 타월 던지지 마세요.” 그러자 김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냐. 넌 이겨, 오늘.”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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