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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5>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대한국민 만세다!”

드디어 공이 울렸다. 작전대로 몸을 최대한 흔들며 상대 선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널드 테일러의 스트레이트 펀치를 피했다. 그러면서 휘두른 왼쪽 훅이 상대를 강타했다. 1회에 다운을 시켰다. 이어 5회에 또 다운을 빼앗았다. 

‘그래, 내가 너를 이겨야만 우리 엄마가 식당에서 쟁반을 나르지 않는다.’ 이런 각오로 휘두른 주먹은 바람을 갈랐다. 계체량 때 나를 깔보던 그의 눈빛이 변했다. 나를 존경하는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몇 회전인지도 몰랐다. 내 귀가 갑자기 뜨끈했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다. 뭔가 흐르는 것도 같았다. 상대의 스트레이트에 내 귀가 찢어진 것이다. 그때가 6회였다. 이때부터 찢어진 귀에서 흐르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운명의 11회전, 심판이 시합을 중단시켰다. 귀에서 흐르는 피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커미션 닥터에게 데려갔다. 의사가 시합을 중지시킨다면 끝인 것이다. 웬일인지 그는 시합을 계속하라고 했다. 흐르는 피로 봐선 중단시켜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상황이었다. 

‘시합은 이기든 지든 멋지게, 매력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리틀 알리’로 불리는 상대와 멋진 경기를 하면 얼마나 근사할까 싶었다. 그런데 이 시합은 멋진 정도가 아니라 승리한 경기였다. 

나는 세계 챔피언을 적지에서 그것도 판정으로 이겼다. 김기수 선수 이후 8년간 아무도 무너뜨리지 못한 세계 챔피언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초대 복싱 세계 챔피언 김기수 선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2대 세계 챔피언 홍수환.”

어린 시절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복싱체육관에 들러 김기수 선수의 연습을 보곤 했었다. 그의 카퍼레이드도 보고 심지어 그가 다녔던 목욕탕까지 따라다녔다. 그런 홍수환이 이제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이다. 이를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러나 사실이었다. 내가 김기수 선수의 세계 챔피언 뒤를 이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멋진 카퍼레이드 선물을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마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한 대표팀 빼곤 없을 것이다. 나는 혼자였고 월드컵 대표팀은 22명이었다. 인원수에 비례하면 시청 앞 내 카퍼레이드가 더 컸다. 

그때부터 정확히 8년 전 김기수 선수의 시청 앞 카퍼레이드를 보고 복싱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그 자리에서 복싱팬들의 헹가래를 받았다. 남아공 더반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 뒤 엄마와 통화했다.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이 전화 통화는 당시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김기수 선수 어머니가 그렇게 부럽더니만 네가 내 일생의 소원을 풀어주었구나. 대한국민 만세다!” 

한국에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육영수 여사도 만났다. 식사 대접도 받았다. 그러나 바라던 훈장은 못 받았다. 다른 나라 시민권자로 해외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사람은 훈장을 받고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으로 적지에 나가 세계 챔피언이 된 나는 훈장을 못 받았다. 

지금도 ‘대한뉴스 992호’에 나오는 귀국 카퍼레이드를 보면 당시 국민들의 복싱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후 나는 전국을 누비며 ‘홍수환 복싱 시범’ 순회시합을 하고 다녔다. 그해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돌아가셨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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