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그러나 핑계는 있다. 평상시 나를 좋아하시던 한 할아버지가 세계챔피언 2차 방어전 자모라 선수와의 경기를 앞두고 한국을 떠나 미국 LA로 가기 전 체육관에 꿀을 가지고 오셨다. 그 꿀이 화근이었다. 이 꿀을 공복에 먹고 링 위에 올랐고 그 꿀에 취해 있었다. 진짜 실력으로 자모라에게 졌다면 그로부터 1년 반 후에 26전 26승 26KO승의 자모라와 인천 선인체육관에서 다시 시합할 이유가 없었다.
시합 당일 계체량 장소를 찾았다. 시합을 주선한 오운모 씨로부터 계체량 장소를 들었지만 한참 헤매다 겨우 찾았다. 도착해보니 우리측 사람은 오씨 뿐이었고 상대 선수인 자모라는 이미 체중을 재고 갔다고 했다. 본래 계체량 때는 두 선수가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오기도 전에 체중을 재고 갔다는 것이다. 내가 챔피언인데도 말이다. 이런 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못 산다고 철저히 무시당한 것이다.
시합은 미국 잉글우드 포럼에서 열렸다. 우리가 투숙한 장소는 LA시내에 있는 웨스턴호텔이었다. 시합시간은 오후 5시인데 정오에 체중 테스트를 통과했다. 밥을 먹고 소화시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반드시 공복으로 링에 올라갔던 나였다.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안 먹고 올라가기로 했다.
한 재미교포 식당에서 준비해준 삼계탕 국물이 먹은 전부였다.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소화가 안 돼 배가 출렁거리는 상태에서 싸우는 것보단 아예 안 먹고 링에 올라가는 게 휠씬 낫다고 생각했다. 등장할 시간이 거의 됐다. 차 트렁크를 열고 가운을 들어 올리는데 그 할아버지가 주신 꿀이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나는 그 꿀을 퍼 먹다시피 했다. 그 다음은 말을 안 해도 알 것이다. 속은 뒤틀리고 가슴은 답답하고 거리 감각도 떨어졌다. 꿀에 취한 것이다. 그렇게 4회전에서 KO를 당했다. 짧은 세계 챔피언 시대를 마감했다. 챔피언이 됐을 때 멋진 카퍼레이드와 정반대로 챔피언 자리를 내주자 혹독한 시련이 이어졌다. 수도경비사령부에 귀대하고 1주일간 자대 영창에 갔다.
나는 ‘홍수환 후원회’ 회장인 정운수 박사를 찾아갔다. 은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링 위에서 쓰러지면 상대 선수가 못 때리게 말려주는 심판이나 있지. 인생에서 넘어지면 너도나도 더 짓밟으려고 난리야. 약해지지 마라.”
사실 지금도 이 정신으로 산다. 링보다 무서운 인생, 하지만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상대를 때리고 상대에게 맞던 복싱 선수가 무슨 일이든 못할까.
다시 시작했다. 나는 자모라 선수와 재대결할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었다. 수코타이 선수와 자모라 선수가 경기를 벌이고 이 경기에서 이긴 사람과 재대결한다는 것이었다. 경기를 하고 승리를 거두며 자모라와의 재경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옵션은 무시됐고 시합도 무산됐다. 자모라 선수는 나를 이긴 후 8연속 KO로 챔피언 자리를 굳혀 나갔다.
1975년 12월 23일 제대 후 나도 연승가도를 달렸다. 태국의 복싱 영웅 보코솔 선수를 다시 이기며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탈환했고 자모라 선수와의 일전을 학수고대했다. 76년 10월 16일 드디어 인천 선인체육관에서 자모라 선수와 다시 맞붙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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