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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8> 심판의 편파 진행… 자모라에 설욕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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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7. 9. 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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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라 선수와의 대전료는 12만 달러였다. 1년 반 전 미국 LA에서 방어전할 때 받은 8만 달러보다 4만 달러를 더 줘야했다. 나는 내 돈 4만 달러를 들여 자모라를 불러들였다. 

‘내가 미국 가서 졌으니 너도 와서 깨져봐라.’ 

문제는 체중이었다. 한계 체중 53.520㎏에 맞추기가 어려웠다. 1년 반 전에도 결국은 체중 실패로 꿀 먹고 취해서 타이틀을 뺏긴 것 아닌가. 나이는 26세가 됐고 체중은 점점 빼기 어려워졌다.

어쨌든 사력을 다해 연습했다. ‘복싱이라는 것이 꼭 주먹만 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경기 전에 먹은 꿀 때문에 졌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리고 싶었다. 드디어 시합 날 아침 간신히 한계 체중을 통과했다. 자모라도 쉽지는 않았던지 얼굴이 핼쑥했다. 체중을 잴 때 팬티까지 벗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자 더 잠이 오지 않았다. 

1976년 10월 16일 오후 5시 인천 선인체육관. 관중은 꽉 들어찼다. 1회전. 아뿔싸! 슈즈 신은 것이 잘못됐다. 강한 이미지를 보이려고 까만 슈즈를 신고 링에 올랐는데 안쪽 밑창이 반질반질해 내 양말이 미끄러져 안쪽으로 쏠렸다. 그래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엄지가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왜 신발을 신고 시합했을까.’ 양말이 두꺼우니 신발을 벗고 했어야 했다. 아차 싶었다.  

상대의 복부를 노렸다. 자모라가 빠지면서 왼쪽 어퍼컷을 날렸다. 내 이마에 적중했다. ‘이거 봐라’싶었다. 1년 반 전의 주먹이 아니었다. 

울분의 주먹 홍수환, 100% KO승률을 유지하려는 자모라의 시합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양발 엄지의 통증이 심해졌다. 운명의 라운드인 9회전 내가 뻗은 원투 스트레이트에 자모라가 걸렸다. 링 쪽에서 빠져나오려다 링 줄에 걸렸다. 다시 한번 들어가 때리려는 순간, 심판이 끼어들어 등으로 막았다. 

심판은 멕시코 사람이었다. 멕시코 선수와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하는데 멕시코 심판을 부르다니…. 제3국인 일본 심판 등을 불렀다면 나는 당연히 9회에서 KO승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아쉬운 9회전이었다.  

11회전. 발도 아팠고 빼기 어려운 체중을 억지로 뺐더니 체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자모라도 10회전을 뛴 경험이 없었다. 그 역시 체력이 소모됐다. 11회전 끝 무렵이었다. 내가 코너에 몰렸다. 

다행히 “땡!”하고 종이 울렸다. 나는 내 코너로 들어가려 했다. 자모라는 종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 공격했다. 30초나 지연됐다. 코너에 들어가 마우스피스만 갈아 물고 나와야 했다. 

운명의 12회전. 다시 코너에 몰려 자모라의 연타를 맞았다. 견딜 수 있었다. 펀치력은 약해도 강한 맷집이 있었다. 그런데 심판이 끼어들더니 자모라의 손을 들어버렸다. 한 번의 카운트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관중들이 링을 점령했다. 내 형은 심판의 멱살을 잡았다. WBA는 결국 무효 경기(no contest)를 선언하고 재시합을 하기로 했다.  

자모라. 나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나보다 키도 작고 팔도 짧은데 어떻게 내 오른쪽 턱을 강타할 수 있었을까. 그 근본 원인을 알아야 했다. 물론 엄지발가락이 아팠던 것, 잠 한숨 자지 못한 것, 멕시코 심판이 온 것, 11회전이 끝난 후 30초간 연타를 맞은 것, 그래서 쉬지도 못하고 12회전에 나온 것 등 정말 억울한 일이 많았지만 말이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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