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2006-06-19|35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475자
1987년 12월이 됐는데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논문 하나를 끝내기는커녕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2년 안에 논문 4개를 낸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된 것이다.
“귀국하려면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미쁘신 하나님,그런 말씀 마세요. 이제 다시는 교회 안 가요.”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을 빙빙 돌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제 정신이 나갔구나 싶어했다. 분이 안 풀리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크리스마스 특송하는 날이었다. 나는 먼저 교회 간다고 해놓고 차를 몰고 무작정 나왔다. 나는 핸들을 돌려 교회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좌회전 깜빡이를 켠다는 것이 실수로 오디오에 꽂혀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쳐 테이프를 오디오 안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그때 헨델의 메시아가 흐르기 시작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눈물과 빗물로 앞이 전혀 안 보였지만 내 차는 어느 새 교회 앞에 와 있었다.
나는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란 각오로 3일 금식에 들어갔다. 금식 마지막날 교회를 갔을 때였다. 성경을 펼치자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진 하박국 3장 17절에서 19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 순간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셨다. “너 그 논문 못쓰더라도 기뻐하겠니?”
나는 깨달았다. 우선순위가 잘못됐구나. 논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나는 그때부터 실험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그만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때부터 실험이 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나는 요로감염증 환자의 소변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제대로 된 실험을 위해서는 요로감염증 환자의 소변이 적어도 100개 이상 필요했다. 하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실험실 인근 병원에서 매주 소변을 얻었으나 갈 때마다 하나 또는 두 개밖에는 얻을 수 없었다. 실험을 계속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복도에 있는 냉동고 청소를 하라고 시켰다. 그 냉동고는 선생님의 친구가 5년 전에 죽으면서 자기한테 기증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내가 냉동고 청소나 하려고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었다.
냉동고 안 얼음을 헤쳐 바구니에서 시험관을 꺼낸 나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곳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요로감염증 환자의 소변이 가득 차 있었다. 대략 20∼30년은 모았을 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이미 5년 전부터 이 냉동고를 준비해 오신 것이다. 할렐루야.
실험은 그때부터 속도가 붙어 한국에 올 때가 되자 정확히 논문 4편이 만들어졌다. 미국에 오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했던 바로 그대로였다.
이렇듯 놀라운 체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미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한국에도 계실까”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또 다른 시련을 낳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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