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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종교국 기자입니다.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를 거쳤습니다. 뻥선 티비, 뻥선 포토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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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뜯어보기/문창극 칼럼

*목적어가 많이 쓰이지 않는다.

*주어 동사가 가깝다.

* 그, 그런, 그러니 지금도, 그것은 등 연결어미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다. 기질은 타고나는 경우도 있고 인생관 혹은 인생경험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기질에 따라 인생항로가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력에도 그 기질은 반영된다. 대통령직은 법이 정한 권력이 있다. 어떤 대통령이든 제도적으로 부과된 권력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대통령의 기질에 따라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동일하다 그러나 천차만별이다.)

그 기질이 우유부단하다면 권력행사도 우유부단하게 될 것이고 그의 기질이 단호하다면 권력도 단호하게 행사된다. 권력의 기질은 바로 리더의 기질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임기가 겨우 반년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을 두고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에 불발된 한·일 정보보호협정 처리과정을 보면 리더의 기질이 국가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처리과정을 보면서 이 말은 하고싶다.라고 해야 호응되는 것은 아닌지/ 임기가부터 싶지는 않다는 추후에 첨언한 듯.)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나라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다.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우리 아픈 역사로 볼 때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과거를 털고 미래로 간다고 해도 그 의미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는)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 때문에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과 군사 유대가 깊어진다면 중국과는 그만큼 멀어지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중국을 배제한 통일은 생각할 수 없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이 우리 제1 무역국이라는 점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이런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비밀안건으로 처리했다. 나쁜 짓을 몰래 하려다 들킨 격이 됐다. 나라의 장래가 걸린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사전에 공개적인 국민 대토론을 벌였어야 마땅했다. 당연히 국무회의도 대통령이 주재하여 난상토론이 벌어져야 했다. 그런 안건을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비밀로 처리했다.

 

대통령의 책임회피다.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자 협정 조인식 30분 전에 취소하는 사태를 빚었다. 일본은 “믿을 수 없다. 도타캔(막판취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며 혀를 찼다.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국익의 입장에서 이것이 꼭 필요했다면 당연히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더욱 가관은 그 책임을 청와대 비서관과 외교통상부 실무국장에게만 몽땅 지웠다. 국무회의를 주재했던 총리나 참석한 국무위원은 허수아비였나? 국무위원들이 국익에 대해 그렇게 무감각할까? 시키는 대로 하는 데만 길들여진 탓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만 골라 장관을 시켰기 때문일까? 나라까지 팔아먹을 무능, 무신경,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일본군이 경운궁을 포위하고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늑약을 강요했을 때 원로대신회의도 그렇지는 않았다.

 

참정대신 한규설 등 3명은 반대하고 5명은 찬성했다.

 

반면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은 뒤로 빠진 채 모든 것을 대신들에게 미루었다. 고종은 한·러 비밀조약을 위안스카이에게 들키자 “아랫사람이 한 짓이어서 나는 모른다”고 했다.

 

헤이그 밀사 때도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그런 그를 두고 “줏대가 없다. 상황에 따라 결정을 바꾼다. (겁쟁이라서) 늘 꽁무니를 뺀다”는 소리가 따라다녔다. 고종의 그런 기질은 권력 행사 방식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는 나라를 빼앗긴 것이었다.

 

이 정권을 뒤돌아보면 고비고비가 모두 그런 식이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거세지자 대통령은 “나도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했다. 천안함 사건 때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 청와대의 일성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천안함 폭파가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연평도에 포탄이 빗발치듯 떨어지는데 “확전은 안 된다”는 게 청와대 지침이었다. 수도 이전 문제에 대통령은 빠지고 정모씨를 총리로 앉혀 총대를 메게 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한 나라를 책임진 사람은 목숨을 걸고 결단할 때는 결단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할 때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져야 할 때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책임의식이 없는 것은 권력의 공공적 성격에 대해 무지하거나,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 정권의 인사가 엉망이 된 이유는 권력을 사적 획득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사형통 형님의 구속도, 퇴임 후 사저 문제도, 청와대 측근들의 비리도 권력의 사적 소유의식이 빚은 결과다.

 

우리의 정치 지형은 보수 대 진보, 좌 대 우로 갈라져 있다. 지금의 대선 구도도 그렇다. 그러나 권력이 실제 행사될 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념 지형보다는 리더십의 기질이다. 요즘 내거는 복지정책만 보더라도 이념적으로 정책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차기 리더는 누가 권력의 책임성과 공공성을 지켜줄 것인가를 선택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유부단, 책임전가, 끼리끼리의 리더십으로는 한반도에 닥칠 커다란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없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기질의 리더가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창극 칼럼 원본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775514&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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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간단사용법(2)-로그인과 로그아웃

(2) 로그인과 로그아웃

1/로그인

트위터를 실행시키면 로그인 화면이 나온다.

기존 계정이 있으면 사용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없으면 가입절차를 진행한다.

 

2/로그아웃

스마트폰에서 트위터 로그아웃 기능은 없다.

보통 홈키를 누르면 트위터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에 로그아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3/메뉴 설명

-타임라인은 소셜 네트워킹에서 자신이나 친구들의 글이 모아져 있는 곳이다.

업데이트 된 글을 보기 위해서는 타임라인뒤에 손가락을 대고 아래쪽으로 당겼다가 놓으면 된다.

-친해지기는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과 자신을 향해 적은 멘션을 볼수있는 곳이다.

-발견하기는 검색창과 같다.

-나에는 자신의 프로필이 있다

 

 

 

 

 

 

 

 

 

 

 

(3) 트웟, RT, DM사용법

1/ 트윗하기

트윗은 내글을 타임라인에 올리는 것이다.

타임라인에 올린 글은 내 팔로워들이 볼수있다.

트위터 화면의 우측 상단에 글쓰기 메뉴가 있다.

이곳을 터치하면 글 입력화면이 나온다.

내용을 입력한다. 오른쪽 상단의 트윗을 터치하면 글이 전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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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간단사용법(1)-어플 설치법

-스마트폰에서 트위터 사용법 -

 

(1) 어플리케이션 설치방법

 

 

이 블그로는 스마트폰에서의 소셜네트워크 사용법만 다루고자 한다. 특히 아이폰에 집중하겠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에 따라 소셜네트워크 어플을 검색, 설치하는데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하는데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 어플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대해서만 다루겠다.

 

스마트폰에서 트위터를 사용하려면 트위터 어플을 설치해야 한다.

어플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같은 개념으로, 스마트폰에 이미 설치돼 있는 어플시장 '앱스토어'에서 구할 수 있다.

 

 

 

 

 

 

 

 

 

1/트위터 어플 검색

앱스토어를 터치해 어플을 실행시킨다. 안드로이드운영체제에서는 안드로이드 마켓이라 불린다.

화면의 아래에 메뉴들이 있다.추천, 카테고리, 인기25, 검색, 업데이트중 검색을 터치한다.

입력창이 나타나면 '트위터'를 입력한다.

 

 

 

 

 

 

 

 

2/트위터 어플 설치

검색된 '트위터'를 터치하면 어플 설명이 나온다.

우측에 상단에 '무료'를 터치한다. '무료'가 '설치'라는 문구로 바뀐다.

설치를 터치한다.

암호 입력창이 나타난다.

암호를 입력하면 설치가 시작된다.

스마트폰 화면에 어플이 나타나며 '로드중' '설치중'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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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안보고 기타치기 연재합니다.

악보 안보고 기타치는 방법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2학년때 였습니다. 하지만 악보가 없이는 단 한곡도 못 치는 바람에 어디 가서 폼 한번 재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악보 없이, 소위 오구리, 기타치는 간단한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대개 음악에 조금만 관심있으면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체계가 없어 인지하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지요.

저도 그랬는데, 최근 한 서점에서 관련 서적을 읽다가 아주 단순화하게 됐습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물론 지금부터 적어가는 것이라 양질에 대해 보장은 못합니다.

그래도 제가 알게 된 내용을 나누게 돼 감사합니다.

주기는 딱히 없지만 2주에 한번정도는 올려볼까 합니다.

 

악보없이 치는 기타는 처음 기타를 치기 시작하는 분들에게도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4가지 코드만 갖고 연습하기 때문에 쉽게 익숙할수있기때문입니다.

부디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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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블루투스 핸즈프리가 내장된 스마트폰

*내가 신형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핸즈프리를 스마트폰안에 넣어서 만들겠다.

-스마트폰 필기펜을 옆에서 뽑아 쓰듯이 말이다.

-스마트폰의 한켠에서 핸즈프리를 뽑아 전화를 받을수 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은 아무래도 커서 불편하다. 그래서 핸즈프리를 사지만 이를 갖고 다니기가 용이하지 않아 보통 사서 쳐박아 둔다.

-사실 동영상 통화를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도 핸즈프리가 없어서다.

 

-하나 더 제안하면 그 핸즈프리는 액세사리로 대리점 등에서 별도 구매가 가능하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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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수영법 발차기 연습법
오랫동안 수영을 했다.

년수로 8년정도, 물론 정기적으로 안한지도 8년된 것 같다.

수영을 하면서 가장 고민이 4가지 영법중 가장 기본인 자유형이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

상체 자체는 좋은데 발차기가 안됐다.

더 결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강사가 없었다.

항상 그 고민을 하다가 정기 강습을 그만뒀다.

 

그러다 만난게 TI 수영법이었다. 인터넷으로 만났고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TI수영법은 내게 희망이었다. 온갖 인터넷 서핑을 통해 자료를 찾았다. 난 늘 뭘 해도 열심이다. 하지만 자료가 마땅치 않았고, 최근에, TI수영법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3,4년이 지난후에야 TI수영클럽이라는 네이버카페를 알았다.

 

아래 카페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일단 나도 연습해보고 다시 정리하겠음)

1. 2비트로 차라.

2. 물을 잡아서 밖으로 털때 같은 발로 찬다이다. (린치뱅코의 비디오와 정관물개님의 말을 종합)

 

 

8.14/뻗는팔과 반대발을 찬다. 아래 동영상

이는 비유적으로 설명한

축구 슈팅할때 정지된 공을 차려고 할때 오른 손을 뻗었다고 당기면서 발을 차는 것과 비슷하다.

 

정관물개님이 테리 아저씨가 2 비트 킥을 배우기 위해서 연습할 때 입수하려는 손을 수경 옆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입수하면서 손의 반대편 발을 차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한 손을 입수하는 순간이란 다른 손이 물을 잡아 당기는 순간이다.

따라서 손을 입수하는 순간 반대편 발을 차라는 이야기는 손이 물을 잡아 당기는 손과 같은 발을 차라는 이야기와 같다.

타이밍으로 보면 물을 잡아서 밖으로 털때 같은 발로 찬다는 거다.

 

밝히리님이 오른팔을 수직으로 올릴때, 오른발을 들고, 오른팔을 입수시킬때 오른발을 찬다고 설명하고 댓글을 통해 반대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아니라 처음 설명이 맞는듯하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것은 당기는 것을 기준으로 할것이냐 미는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인데, 개인적으로 TI수영의 개념으로 봐서는 미는 것에 맞춰야 할 듯하다.

 

이불 위에 엎드려서는 오른팔을 뻗을때 왼 발을 내리면 된다.

 

[출처] 내가 이해한 TI 수영법 (3) (TI수영클럽(TISC)) |작성자 밝히리, 정관물개님 등

 

 

린지뱅코의 수영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e75PdZUg6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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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fa

통독의 과정에서 독일교회의 감동적인 헌신이 있었다

평화열차는 분단의 벽을 넘는 한반도 평화운동이다

무엇을 기록하고 남길 것인가. 중요한 취재를 앞둔 기자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관련 자료, 거점지역에 대한 역사적 기술 등을 검토했다. 긴 기차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책을 가방에 넣어야 한다. 작은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데 책만 한 것은 없다.

충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준비를 마치고 아침이 밝았다. 답사팀은 공항에서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보내게 될 16박17일의 여정. 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났다.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해는 뉘엿뉘엿 스카이라인 뒤로 숨었다. 도로변 곳곳에 무성하게 나무들이 솟았다. 베를린의 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세련되고 품격 있게 짙어졌다. 동행이 있는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평화열차 답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독일 사람들은 통일의 경험을 자랑스러워했다.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사상가들을 높이 평가했다. 독일 지식인들은 고매하고 정신적이며 난해한 글쓰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역사를 대하는 방식, 정치 체제, 건축양식 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는 진지하고 정중했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반성하면서 극복했다.

독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과 닮았다. 독일은 2차 대전 패전 후 분단을 경험했고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다. 한국은 분단과 6.25 전쟁을 경험한 후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차이가 있다면 독일은 1990년 통일을 성취했고, 우리는 여전히 정전협정 상태라는 것이다.

답사팀은 1960년대 파독 간호사 출신 장로님을 만났다. 40여 년 전 꽃다운 나이에 고향을 떠나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은 되돌아가지 않고 남았다. 독일 교회 성도들은 누군가 시작한 ‘우리의 소원’을 구성지게 합창했다. 통독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먼발치에서도 통일 한국을 그리고 있었다. 분단의 벽을 넘는 평화열차가 성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다.

평화열차에 대해 소개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기자라면 당연히 던져야할 질문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질문이 한가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민족주의적인 감수성이 밀려왔다. 서로 말없이 눈치를 보긴 했지만 눈물 한 방울씩은 필요했다.

답사팀은 16박17일 중 8일을 기차 안에서 보냈다. 긴 시간 기차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호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를 이 짧은 졸고에 다 담을 수 없다. 이번 일정에서 답사팀은 독일 러시아 등 해외 교회와 한인 교회 성도들의 평화열차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다.

안타까운 것은 보수 교단 해외 선교사들이 보여준 차가운 태도다. 이들은 먼 길을 떠나온 답사팀의 평화열차에 대한 설명조차 거부했다. 일부 지역 선교사들은 공식적으로 평화열차 반대를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WCC 총회를 대하는 보수 교단의 태도, 평화 통일운동을 보는 왜곡된 관점이 평화열차 답사팀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되레 답사팀을 격려한 것은 통일의 경험을 가진 독일 교회였다. 독일 개신교협의회 폴 오펜하임 아시아 담당국장은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모든 의심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답사를 두고 교계 한 목사는 “평양은 지나왔느냐”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실현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독일 화해교회 이야기가 떠올랐다. 베를린 장벽 옆에 세워져 있던 화해교회는 관측병의 시야를 가려 총을 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85년 강제 철거됐다. 만프레드 피셔 목사는 무너진 교회 터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5년 동안 예배를 드렸다. 통일 후 독일은 피셔 목사의 기도에 응답했다. 교회 터를 보존하고 교회 잔해를 모아 기념 교회를 건축했다.

피셔 목사는 지금도 매일 정오가 되면 분단의 벽을 넘다가 희생당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피셔 목사는 “독일이 통일되기 1년 전만해도 통일이 빨리 될 것이라고 했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통일은 생각지도 못했던 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면서 “평화열차는 갑자기 찾아올 통일을 준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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