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애국가 작사가, 두 크리스천 중 누구?… 서울신대, 애국가 작사가 규명 맞장 토론

내가 쓴 기사모음

by 뻥선티비 2016. 2. 17. 00:09

본문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인가, 윤치호인가를 놓고 16일 맞장 토론이 벌어졌다. 서울신대(총장 유석성)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 규명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애국가는 안익태(1906∼1965)가 작곡했다고 알려졌지만 작사자는 규명되지 않았다. 정부는 1955년대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조사했으나 ‘작자 미상’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 작사자 후보로 5인이 거명됐으나 가장 유력한 이가 윤치호(1865∼1945), 안창호(1878∼1938)였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토론회에는 이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안용환 서울신대 초빙교수가 참석해 각각 ‘윤치호 작사설’ ‘안창호 작사설’을 주장했다.  


김 상임이사는 1955년 조사위가 윤치호를 작사가라고 결론 내렸으나 문교부가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확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주요한 위원이 ‘안창호 작사설이 있다는데 이것은 신화다. 윤치호는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했고 조사위 3차 회의 이후 ‘애국가 작사가는 윤치호로 결론 났고 확정하여 문교부에 보고할 것’이라는 각 일간지의 보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때 위원 13명 중 11명이 윤치호 작사설에 찬성했고 나머지 2명도 안창호 작사설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당시 김인식이 자기가 작사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찬성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김 상임이사는 “윤치호가 자필로 쓴 ‘가사지’와 1908년 6월 발행한 윤치호 역술 ‘찬미가’를 토대로 애국가에 ‘하나님’이란 용어를 쓴 것으로 보면 윤치호가 작사한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윤치호는 일제강점기 조선 감리교의 ‘대부’이자 조선기독교 원로였다. 


또 “애국가 작사가는 윤치호라고 안창호가 직접 말한 것을 미션스쿨 대성학교의 수학교사 채필근이 들었다는 증언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아이(애국가)를 해산하면 누구의 씨인지 가장 확실히 아는 사람은 산모인 아내”라며 “안익태는 자기의 남편(작사가)이 안창호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관련한 증거로 당시 가사가 전달된 상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여주며 “안익태는 다과회 후 황사선 목사로부터 애국가의 가사를 정확하게 받아 적었고 황 목사는 (안익태에게) 이것이 안창호 선생이 지은 시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안창호가 친필로 쓴 현재의 애국가 1∼4절과 후렴이 비슷한 ‘무궁화가 2’가 발견됐는데, 애국가인 ‘무궁화가’는 당연히 ‘무궁화가 1’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애국창가집에 수록된 안창호 작사의 ‘권학가’의 제목 밑에 ‘무궁화가와 한곡됴(곡조)’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며 “이는 애국가의 작사가가 안창호라는 것을 확실히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회 열기는 뜨거웠다. 참석자들은 200석이 모자라 이동 통로 바닥에 앉았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축사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