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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목사의 기독교 미술사] 5) 로마네스크 미술에서의 교회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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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4. 12. 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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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목사의 기독교 미술사] 5) 로마네스크 미술에서의 교회건축

입력 2014-12-23 11:27 수정 2014-12-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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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목사의 기독교 미술사] 5) 로마네스크 미술에서의 교회건축 기사의 사진
1. 로마네스크미술(Romanesque Art)은 고딕미술(Gothic Art)과 함께 서구 기독교미술의 백미로서 중세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표현한 미술양식이다. 

로마네스크(Romanesque)라는 말은 ‘로마와 같은’이라는 뜻으로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서구 교회건축의 외관이 두꺼운 벽과 반원아치, 기둥의 사용 등 고대 로마의 석조건축을 닮았음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19세기 미술사학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바사리(G. Vasari)에 의해 고딕으로 통칭되었던 중세미술이 로마네스크 개념의 대두로 세분화된 것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건축은 물론 조각, 회화, 공예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이 시기 미술에 대한 총체적인 양식개념을 뜻한다. 

로마네스크양식은 당대 지중해유역의 비잔틴양식, 이슬람양식에 문화적으로 열세이던 서유럽이 알프스 이북 대서양유역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스스로 발전시킨 최초의 단일양식이다. 

이 양식의 출현은 농업생산력 증대에 따른 봉건주의의 정착, 클뤼니(Cluny) 수도원에서 비롯한 수도원 개혁운동 그리고 밀레니엄 전후 종말론적 신앙열기에서 기인한 성지순례 등을 배경으로 한다. 

2. 주후 1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유럽전역에서 반원아치, 장십자가형(Latin Cross) 평면구조, 종탑, 광탑 등 형식상의 공통점을 지닌 교회건축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대규모 미술현상은 성지순례(Pilgrimage)를 통한 광범위한 문화교류와 접촉, 회교도들에 대항한 재정복(Reconquista)과 십자군원정(Crusade, 1096-1279년)에 따른 기독교세계 결집의 결과이다.

특히 서로마제국 멸망(476년)이후 카롤링거왕조기를 제외한 오랜 혼란기에 고대 고전(Greco-Roman) 학문·문학·예술의 유일한 전수와 거점으로서 수도원이 기여한 로마네스크 미술 생산주체로서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초기 기독교회의 평평한 목조천장을 아치를 이용한 둥근 천장 즉 궁륭형(vault)의 석조로 개조한 점이다. 

이러한 석재궁륭은 교회내부를 크고 높게 보이게 하였으며 화재에도 잘 견딤으로 영원히 존재해야하는 신의 전당의 구현에 적합하였다. 

초기에는 터널식 원통형 궁륭(tunnel vault)이 적용되었으나 많은 양의 석재가 필요했고 채광도 잘 안되었기 때문에 원통형 궁륭을 직각으로 교차시키는 교차 궁륭(groin vault)으로 발전했다. 그럼으로써 무거운 천장의 무게가 경감함으로 늘어난 문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내부의 은은한 빛(고딕의 현란한 빛과는 다른)이 견고하고 고요하며 평온한 느낌의 로마네스크교회 특유의 분위기를 이루었다. 

                      (사진1) 로마네스크 건축양식- 아치와 궁륭(원통형 궁륭, 교차형 궁륭)

3. 스페인 북부에서서부터 프랑스, 라인강 계곡의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와 영국 등 서유럽 전역에 나타난 로마네스크양식은 기독교신앙을 구심점으로 양식상의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또한 기능과 풍토, 소재의 차이로 인해 지역별로 여러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활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났던 곳은 독일이었다. 

독일로마네스크는 10세기 중반 로마네스크양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오토왕조 시대의 전(前)로마네스크양식(Vorromanik/Pre-Romansque, 오토양식)을 바탕으로 11세기 후반 살리어왕조, 쉬타우퍼왕조 시대에 개화하였다. 

쉬파이어 대성당(Speyerer Dom)은 초기 궁륭 천장을 지닌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건축으로 이후 서유럽 교회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이 성당은 중정이 없이 바로 길에서 진입하게 되어 있으며 3랑식 구조에 두 개의 돔과 네 개의 종탑을 지니고 있다. 

신랑과 익랑의 교차부에는 동방을 뜻하는 팔각형 돔이 설치되어 있으며 제단 아래 납골당에는 살리어왕조(Salier) 황제들의 무덤이 있다. 

교회 입구에 있던 중정(atrium)을 없애고 대신 탑을 세우는 방식은 고대교회와 중세교회를 구분하는 확연한 기준점이다.

                 (사진2) 쉬파이어 대성당(Kaiserdom zu Speyer), 1024-1106년, 독일 쉬파이어

                         (사진3) 쉬파이어 대성당 내부, 초기 궁륭(vault) 형태가 나타난다. 

            (사진4) 쉬파이어 대성당, 신랑과 익랑 교차부의 팔각형 돔, 동쪽에서 바라본 외관

보름스 대성당(Wormser Dom)은 동·서 양단에 내진(choir)이 있어 양 측면 중앙부에 출입구가 있는데 이러한 이중내진(Doppelchor)은 독일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징이다. 

동·서 양쪽의 내진은 각각 동쪽은 영적인 세계와 교회의 권위를 서쪽은 세속의 세계와 국가의 권위를 상징함으로 두 권력의 통합을 추구한 신성로마제국의 이상을 나타내었다. 

서임권 분쟁(Investiturstreit, 1076년부터) 이후 이중내진은 교황권과 황제권, 교회권과 세속권의 긴장관계를 반영한다. 

내부 천장은 교차궁륭을 사용하며 늑재(ribbed vault)를 사용하는 점에서 고딕양식의 도래를 예고한다. 
                   (사진5) 보름스 대성당(Kaiserdom zu Worms), 1110-1181년, 독일 보름스

                        (사진6) 보름스 대성당 내부, 교차궁륭과 늑재 사용, 독일 보름스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교권에 대항하여 정치적인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봉헌한 쉬파이어대성당, 보름스대성당, 마인츠대성당을 가리켜 ‘라인강변의 3대 황제 대성당’(3 Kaiserdome)이라고 부른다. 

초기로마네스크시대에 쾰른 등지에서 출현한 베스트베르크(Westwerk) 교회는 두 개의 탑으로 교회의 서쪽 정면을 강조한 양식으로 서구 교회건축에 동반하는 첨탑의 시초를 이룬다. 이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상크트 판탈레온 교회(Sankt Pantaleon) 이다. 

       (사진7) 상크트 판탈레온 교회(Sankt Pantaleon), 980년, 베스트베르크(Westwerk), 독일 쾰른

프랑스에서는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길목에 순례자들을 위한 ‘순례식 교회’(Pilgrimage Church)라는 독특한 형식이 나타났다. 

당시 성지 순례는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로마와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그리고 예루살렘 등 3대 성지를 향해 고해의 형식으로 행해졌다. 성지순례는 성지에 보관된 성유물 경배 시 이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성유물 숭배에 따른 것이다. 

투르의 생 마르탱교회에서 시작된 순례교회는 동쪽 제단을 둘러싼 회랑이 발전한 것이 특징이다. 

툴루즈의 ‘생 세르냉 대성당’(Saint Sernin)은 순례식 교회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툴루즈는 프랑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주요 순례길에 위치해 있다. 

장십자가(Latin Cross) 평면구조 교회의 세로축 신랑과 가로축 익랑(트랜셉트)이 만나는 교차부,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부분에 팔각형의 광탑이 세워져 명상적인 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동쪽 제단 주위로 회랑을 두르고 여기에 작은 예배당들을 방사형(radiating)으로 덧붙였다.

     (사진8) 생 세르냉 대성당(Basilique Saint-Sernin de Toulouse), 1070-1120년, 프랑 스 툴루즈


          (사진9) 생 세르냉 대성당, 앱스(제단) 주변의 방사형 채플과 팔각형의 광탑, 툴루즈 

프랑스 
                                        (사진10) 생 세르냉 대성당 평면도

영국의 로마네스크양식은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공이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들여왔기 때문에 노르만(Norman) 양식이라고 불려진다. 친교황적인 노르만양식은 캔터베리의 앵글로-색슨 전통을 대체함으로 노르만족이 지닌 정치적인 힘을 상징하였다. 

더램 대성당(Durham Cathedral)은 영국 노르만양식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더욱 장식적이며 웅장한 느낌이 든다. 

같은 시기 남부 이탈리아의 비잔틴 영지와 이슬람이 지배하던 시칠리아를 정복한(1059년) 노르만인들 역시 친교황 정책을 고수했으나 문화적으로는 비잔틴양식을 수용한 관용적?절충주의적 입장을 지닌다. 

                     (사진11) 더램 대성당(Durham Cathedral), 1093-1133년, 영국 더램

                        (사진12) 더램 대성당(Durham Cathedral) 내부, 영국 더램

이탈리아 성당들은 십자 교차부에 돔을 얹은 본당과 종탑, 세례당이 별개로 구분되는 것이 특징이다. 

피사대성당(Duomo di Pisa)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로마네스크 건축이다. 

십자형 평면 교차점에 돔을 얹었으며 내부 천장은 바실리카 전통을 따른다. 두오모 파사드(서쪽 정면부)는 아치장식으로 덮여 있는데 열주를 많이 사용함으로 고대의 전통을 재현한다. 다색의 대리석 패널로 쌓인 표면장식은 토스카나 지역 특유의 양식을 이룬다. 돔에 나타나는 작은 장식의 연속은 비잔틴의 특성을 수용한 것이다. 

피사의 사탑이라고 알려진 종탑은 본당 동쪽 제단부 옆에 분리되어 서있다. 

서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십자군원정의 중간 기착지였던 피사는 고대 로마의 전통을 기반으로 주교역지였던 비잔틴의 양식 그리고 당대의 북방 로마네스크 양식을 수용한 독특한 건축양식을 이루었다. 

                    (사진13) 피사 대성당(Duomo di Pisa), 1053-1272년, 이탈리아 피사 

                          (사진14) 피사 대성당 내부천장, 바실리카전통을 따르고 있다. 

   (사진15) 피사 대성당 파사드(서쪽 정면부), 아치와 열주를 사용해 고대의 전통을 재현하고 있다. 

4. 로마네스크교회의 전체적인 인상은 두터운 벽과 탑으로 인해 견고한 성채를 연상하게 한다. 마치도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 지상에서 암흑의 세력과 영적 싸움을 전개하는 ‘전투적인 교회’의 모습을 대하는 듯하다. 

당시의 교회가 19세기 낭만주의 문필가들의 표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천년과 수난 천년(주후 1000년-1033년)의 시기에 임할 재앙과 종말에 대한 이른바 ‘천년의 공포’에 집착하였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영적인 자각과 경건에 몰두하였고 그에 상응하는 그들의 신앙과 자의식을 교회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음호에 로마네스크미술의 조각과 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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