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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진리의 기준] ④성경은 무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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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3. 10. 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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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출처: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2. 성경·진리의 기준] ④성경은 무오한가


성경의 문자적 무오여부 따지기 보다 하나님 말씀이 가지는 진정성 찾아야


오늘은 성경과 연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주제를 함께 다루려 한다. 성경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성서비평학’에 대해 볼 것이고, 이어서 ‘새로운 성경’이 나오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은 무오한 것인지를 보겠다. 


성서비평학 


성경과 연관해서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성서비평학’이다. 19세기 이전의 성서비평은 성경의 원전과 가장 가까운 본문을 찾는 ‘본문비평’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되면서 성경이 역사적 과정을 거쳐 발전되고 편집됐다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신약의 네 복음서가 연구의 중심에 놓였다. 연구를 거듭하면서 다수의 학자들은 네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먼저 쓰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마가복음은 마가가 예수님에 대해 직접 본 것을 단숨에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어록’(Q자료)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가복음과 어록을 중심으로 두 자료설, 혹은 마태와 누가가 참고했다고 가정하는 각각의 자료를 더해서 네 자료설이 나왔다. 그리고 자료설을 바탕으로 여러 비평 방법이 발전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복음서가 일정한 형식(form)으로 구분돼 있다는 양식비평, 저자의 신학이 자료 선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편집비평, 복음서를 이야기의 전개로 보는 서술비평 등이 있다.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은 성서비평학과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한다. 그럼 성서비평학에 대해 간략한 정리해 보자. 우리는 성서비평학이 나오기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성경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됐기에 성경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나 연구는 필요하다. 성서비평학은 성경 문헌의 발전 과정과 배경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성서비평학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성서비평학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고 수정됐다. 지금도 다양한 비평 방법이 실험적으로 제시되고 논의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비평학도 절대적 가치는 없다. 성경의 말씀을 보다 잘 드러내는 것에 봉사하는 범위에서 성서비평학을 사용하면 되겠다.


새로운 성경의 출현?


최근 우리나라에는 성경과 관련해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도마복음’이 일반인에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생겼다. 더 근래에는 가롯 유다를 호의적으로 묘사한 ‘유다복음’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사회적으로 시끄러웠다. 사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발견돼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연구가 끝났다. 유다복음도 2세기에 처음 알려진 후 오래전에 기독교 전승에서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지 못한 배제된 자료다. 


그런데 일부 언론과 얼마의 대중적 인사들이 도마복음과 유다복음을 언급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조선일보는 유다복음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는 식으로 긴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또 김용옥은 도마복음을 신약성경이 알려주지 못한 예수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대단한 자료인 것처럼 주장했다. 중앙일보가 김용옥의 주장에 대해 전문적인 검증도 없이 ‘도올의 도마복음’을 2년간 100회에 걸쳐 연재한 것은 무책임한 일이었다. 


그 후 일반 신자들이 새로운 성경이 발견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새로운 성경이 발굴되거나 성경과 동일한 가치의 자료가 발견된다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이는 기존 성경의 ‘필사본’이 발견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새로운 성경’이 나타나 기존 성경을 대체하거나 혹은 기존 성경과 유사한 권위를 인정받는다면 기독교는 경전에 대한 정체성(identity)을 상실할 것이다. 


과연 미래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필자가 단언하건대 새로운 성경은 없다. 정경의 형성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성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경에 들어올 정도의 ‘문서’가 있었다면 이미 초기 공동체들에서 사용됐거나 혹은 최소한 그 가치를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교부들의 문헌과 초기 공동체의 자료에는 신약 27권에 필적할 다른 문서가 없었다. 따라서 갑자기 새로운 성경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 성경은 오늘날 한 개인이나 어떤 집단이 새롭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성경의 출현 가능성을 말하거나 기존 성경을 능가하는 자료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은 정경 형성 과정에 대해 대단히 무지한 사람이다. 


성경은 무오한가 


성경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한국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제 위에 크게 두 가지 관점을 유지했다. 그것은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과 유기적영감설(organic inspiration)이다.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구절과 문자 하나까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감에 의했다고 본다. 축자영감설은 성경무오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축자영감설은 성경 원전이 없다는 점, 성경 번역 시에 생기는 문제점, 성경의 문자나 구절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작업에서 경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하다. 기록된 문자와 하나님 말씀을 동일시할 때 뜻이 문자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유기적영감설은 성경 기자의 인격성이나 언어적 특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성경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됐다고 보는 관점이다. 최근 성경 필사에 나타난 문제나 번역상 문제를 들어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무오를 문자적인 무오류로 볼 필요는 없다. 성경의 무오 여부가 성경을 기록한 언어나 자구의 한계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의 무오는 하나님 말씀이 가지는 진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유기적영감설은 성경 기자가 가지는 개인적인 특성과 역사적 정황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최근의 성경 언어에 대한 연구, 성서비평학의 연구 결과, 성경에 대한 전승 등을 고려할 때 유기적영감설 정도면 무리가 없겠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www.facebook.com/dkkim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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