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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복지재단 (1)
[남북 고위급 접촉 타결-한국교회, 화해·협력의 물꼬를 트자] 北에 ‘무언의 감동’ 주는 손길을




남과 북은 25일 발표한 공동보도문 6항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전 한국교회가 남북 민간교류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조항은 한국교회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교회는 2010년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5·24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남북 민간교류를 주도해 왔다. 1990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중심으로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처음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벌였다. 1992년에는 기독의료인들을 중심으로 한 교계 인사들이 ‘사랑의 의료품 나누기운동’을 펼쳤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첫 대북 지원 사업이었다. 1995년 북한 대홍수 때는 남북나눔운동, 월드비전, 기아대책 등이 ‘한국 기독교 북한동포돕기후원회’를 조직해 북한을 본격 지원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한민족복지재단, 유진벨재단,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등이 농업기술 전수, 젖염소 보내기, 평양 빵공장 설립 등 다양한 대북지원 사업을 펼쳐 왔다. 2007년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평양에 ‘평양 조용기 심장전문병원’을 착공했다. 2009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2009년에는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첫 남북 합작 대학인 평양과기대를 설립했다.


남북교회 간 교류도 타 종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은 2005년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남북 공동 기도회를 개최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평양 봉수교회와 평양신학원 등의 재건축을 지원했다. 한국교회는 5·24조치로 인해 대북 교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도 영유아용 분유 보내기, 의약품 지원 등을 지속해 왔다.  


북한사역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 김영식 목사는 “다른 종교나 단체에서도 개신교에서 대북 지원을 가장 많이 한다고 인정한다”면서 “앞으로는 대북 지원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두고 더 집중적으로 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대북 지원 및 교류에 나서온 것은 이들 사업이 북한 주민 구제인 동시에 장기적으로 선교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은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에 무언의 감동을 줄 수 있다”면서 “통일 이후를 대비해서라도 북한을 조건 없이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한민족복지재단 회장 김형석(서울 그레이스 교회) 목사는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데 항상 본을 보여 왔다”며 “민족적, 애국적 차원에서도 한국교회가 대북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대북 지원 사업을 펼쳐온 사역자들은 이번 남북 합의를 계기로 많은 교회와 기독교 단체가 대북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 젖염소 보내기운동을 펼친 이관우 CCC통일연구소장은 “대북 지원 사업을 펼치는 종교기관 중 70∼80%가 기독교 관련 단체”라며 “정부가 대북 교류의 길을 내주면 민간교류에 참여할 교회나 단체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장인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도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에 따른 민간교류 협력 활성화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며 “막혀 있는 담이 뚫린 만큼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교류협력의 길이 열리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나서지 말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구세군 김규한 해외개발지원부장은 “그동안 북한이 합의만 하고 실행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며 “성급하게 대북 지원에 나서기보다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병선 양민경 김아영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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