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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자살예방전화 “지금은 통화 중”

죽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보다’라고 했다. 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 같은데 그래도 죽고는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한 지인과 나눈 이야기다. 10여년 만에 전화가 왔는데 서울 이태원의 한 교회에서 영어 성경을 공부할 때 알던 친구였다. 당시 형편이 상당히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머니, 형과 사는데 형이 아팠다. 정신분열증이라고, 조현병을 앓았다. 이 병은 망상과 환각 증상을 보인다. 누군가 자기를 감시한다거나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다. 같이 사는 가족들의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는 형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가족 중에 수입이 있으면 정부 지원이 없어져 형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꿈도 못 꿨고 도서관 다니며 공부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때는 어머니가 형을 돌봤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몫이 됐고 어머니는 90세 나이로 거동도 쉽지 않다고 했다.

최근엔 형 때문에 집에 경찰까지 왔었다. 약을 먹고도 안 먹었다며 또 먹으려 하니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언쟁은 물론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형이 하겠다는 대로 그냥 둘 수도 없고 말리는데도 한계가 있고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그날은 무언가에 씐 것 같았다고 했다. 죽음의 그림자. 아픈 형을 30여년간 보고 살면서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날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것 같았다고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고 상담을 받기로 했다. 자살예방상담 전화번호를 찾았다.

시간은 밤 9시 즈음,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줄 누군가를 기대하며 번호를 눌렀다. 통화 중이었다. 잠시 있다가 다시 전화했다. 또 통화 중이었다. 다섯 번을 눌렀지만 통화 중이었다. 결국 포기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직접 전화해보기로 했다. 지난 12일 자정 즈음 포털 검색창에 ‘자살’을 넣었더니 24시간 상담 전화번호가 나왔다.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청소년전화(1388),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 한국생명의전화(1588-9191)다.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데 상담 전화를 하려니 멋쩍었다. 통화가 되면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나,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부터 해야 하나, 통화 즉시 “잘못 걸었습니다”라고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일단 연결되면 그냥 끊어버리기로 했다.

큰마음을 먹고 ‘1393’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것 같더니 메시지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모든 상담사가 상담 중으로 연결이 어렵습니다.” 한 번 더 전화했는데 같은 메시지였다. ‘1577-0199’에 걸었다. “죄송합니다. 통화량이 많아 상담원 연결이 어렵습니다. 자살예방상담은 1393에서 가능합니다”라더니 끊겼다. ‘1588-9191’에 전화했다. “고객님께서 통화 중이오니 잠시 후 다시 걸어주세요.”

응급전화도 통화 중일 수 있다. 통화 중일 때 전화하면 당연히 통화 중일 것이다.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살을 생각하다가 전화했으면 통화 중일까도 싶다. 실제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2021년 통계에서 한국은 10만명당 23.6명이 자살했다. 그해 1만335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일일 평균 자살 사망자 수는 36.6명이었다.

그래도 응급전화, 자살예방상담전화가 통화 중이어선 안되는 것이다. 자살예방상담전화는 살려 달라는 마지막 구조 신호다. 이 신호가 수신되지 못하면 바로 한 사람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시스템을 바꾸든 인력을 보강하든 그게 뭐든 간에 구조 신호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콜백’이 없는 것도 아쉽다. 이곳에 전화했던 사람이라면 자살 고위험군일 텐데 콜백을 해서 어떤 상황인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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