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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보육원생 137명의 아주 특별한 성탄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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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4. 12. 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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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의 일상이 소원인 아이들이 있다. 대형마트에 가서 쇼핑 카트를 끌며 과자와 옷, 장난감을 사고 식료품 코너에서 시식을 하는 일이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평생소원 중 하나다. 

전북 군산 남군산교회(이종기 목사)는 지난 19일 오후 6시 삼성애육원 군산일맥원 등의 보육원생 137명을 이마트 군산점으로 초청했다. 아이들에게는 1인당 5만원짜리 상품권을 한 장씩 지급했다. 

중·고생 아이들은 2∼3명씩 짝을 이뤄 카트를 끌었다. “어느 코너부터 갈까”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카트의 손잡이를 쥔 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말을 꺼낸 아이도 부리나케 뒤따랐다.

초등학생들은 보육원 선생님들이 데리고 다녔다. 하성우(9·가명)군은 껌 한 통과 바나나 우유 한 묶음을 카트에 집어넣더니 선생님에게 “이제 얼마 남았어요?”라고 물었다. 옆에 있던 아이는 선뜻 물건을 고르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들과 동행한 남군산교회 성도 박종석(55)씨는 “성탄절을 앞두고 마트에 간다고 공지하면 한 달 전부터 사고 싶은 것을 썼다 지웠다 한다”면서 “그 목록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북적였던 곳은 옷 코너였다. 2만∼3만원으로 살 수 있는 후드 티, 라운드 티 등이 인기였다. 여중생들은 스킨, 로션, 폼 클렌저 등 화장품을 많이 샀다. 카트를 끌고 속옷과 책 코너를 왔다 갔다 하던 서형석(13·가명)군은 “후드 티 2만9900원, 양말 9900원어치를 샀는데 나머지 돈으로 내의를 살까, 책을 살까 고민 중”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쇼핑카트에 탄 태연(6·가명)이는 더 신났다. 보육원 김형숙(40·여) 선생님이 따뜻한 티셔츠를 보여주며 “태연아, 이거 어때”라고 묻자 “예뻐요, 빨리 그거 사고, 장난감 판매대로 가요. 야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이 이마트 안에 길게 여운을 남겼다. 

남군산교회가 보육원 아이들에게 소중한 일상을 선물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교회에서 음식을 대접받은 한 보육원생이 “부모 있는 아이들처럼 대형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밀며 쇼핑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감사편지를 적어 보냈던 것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 밑에서 자란 이종기 목사는 이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수 있었기에 가슴이 아팠다. 

남군산교회 사회봉사연구 사역위원회는 그해부터 마트 쇼핑이라는 성탄선물을 마련했다. 남군산교회에선 평신도들이 중심이 된 위원회가 기획과 진행, 마무리, 평가까지 모든 사역을 주관한다. 예배연구 사역위원회 등 위원회만 25개다.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사역은 사회봉사연구 사역위원회가 맡고 있다.

남군산교회는 지역 내 모든 보육원 아이들을 초청해 외식을 하는 행사도 갖는다. 2004년부터 5월 가정의 달과 11월 추수감사절 등 해마다 두 차례 아이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 목사는 “행사를 거듭하면서 아이들도 자신감을 많이 회복해 어디 가서나 당당하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처음 외식을 할 때는 식당에서 주는 대로 먹었지만 지금은 ‘고기 더 주세요, 밑반찬 더 주세요’ 등 적극적으로 주문한다. 처음 뷔페에 갔을 땐 우르르 몰려다니며 허겁지겁 먹었지만 이제는 제법 여유로워졌다.

남군산교회는 1988년부터 보육원 아이들을 돌봐왔다. 처음에는 5명의 원생들에게 매달 용돈을 주고 1년에 두 차례 외식을 시켜주며 옷을 사줬다. 1995년부터는 한 곳의 보육원을 정해 1년에 한 번씩 모든 아이에게 옷을 사줬다. 2004년부턴 지역의 모든 보육원으로 지원을 확대했다.

여기에는 평신도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인 교회는 교단 내에서 1인당 연간 헌금 총액(280여만원)이 가장 많은 교회로 꼽힐 정도로 평신도들의 헌신도가 높다. 1983년 30명으로 개척한 교회는 현재 장년 성도 820여명 규모로 성장했다.

군산=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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