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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석봉 (1)'토스트 노점상' 창업 3년만에 연 매출 1억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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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5. 1. 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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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점상 연봉 1억 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은 누가 뭐래도 아내 하영숙(55) 덕분이다. 1997년 내가 경기도 안양 성결대 목회학과를 졸업했을 때 아내는 “공부를 마쳤으면 이제 돈을 벌어오라”고 내 어깨를 떠밀었다. 교육전도사로 받는 사례 10여만원 말고 진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아내는 “오늘부터 나는 일을 안 할 거야. 1주일 후면 우리 집에 쌀이 떨어져”라고 잘라 말했다.


그때까지 가정경제는 아내가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변변한 직장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과 용접 일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결혼 전에는 유치원 교사를 했고, 결혼 후에는 돈 없는 나를 대신해 놀이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아내는 돌보던 아이들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200만원이 든 통장을 하나 내밀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2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중고 스낵카를 사서 토스트를 팔기 시작했다.

경험은 없었다. 노점상은 그 자체 불법이었다. 경쟁업체라고 할 수 있는 주변 상인들과 거리의 깡패들도 그냥 보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당시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주문받고 계산하고 토스트를 구워서 건네는 모든 과정이 모두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해야 하는 일인데도 내겐 너무 어려웠다. 그만큼 내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하지만 노점상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연간 매출 1억원을 달성했다. 주식회사 석봉토스트를 세워 대표이사가 됐고 지금까지 전국에 가맹점 300여개를 냈다.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점에도 입점했다. 기업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강사협회 대한민국 명강사 95호, 중소기업청 지정 ‘YES리더 기업가 특강’ 강사를 지냈다. 

아내와 함께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만든 분은 소천하신 반석성결교회 김용련 원로목사다. 김 원로목사는 나의 영적인 멘토셨다. 아내와 김 원로목사를 만나게 하시고 오늘날의 김석봉을 만드신 이는 물론 하나님이시다. 나는 사업가가 안 됐다면 목회자가 됐을 것이다. 

사업으로 승승장구할 때 나는 이제 사업을 접고 목회의 길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서 ‘이제 사업을 그만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은근히 기대하며 금식기도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목회가 아닌 사업을 하라는 확신을 주셨다. 이후 나는 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전북 정읍 내장산 기슭에서 8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1950∼60년대에는 어렵지 않은 가정이 드물었지만 우리 집은 더 어려웠다. 방 한 칸짜리 초가집에 열 식구가 살았다. 농지는 없었다. 산을 개간해 고구마를 심었고 겨우내 고구마만 먹었다. 고구마도 떨어지면 정부에서 지원받는 밀가루로 연명했다. 밀가루를 담았던 포대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신발도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표현해 ‘절망’ 그 자체였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약력=1958년생. 전북 정읍 내장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거쳐 91년 경기도 안양 성결신학대 졸업. 97년 노점 ‘석봉토스트’ 창업, 2005년 국제코스타 강사, 2009년 ㈔한국강사협회 대한민국 명강사 95호, 2011년 중소기업청장 YES리더 기업가 특강 강사 역임. 현 ㈜석봉토스트 대표, 극동방송 운영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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