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싱 경량급에서 가장 인기 높은 체급이 밴텀급이다. 모든 도전자들이 호시탐탐 내 타이틀을 노렸다. 첫 번째 도전자는 필리핀의 카바네라 선수였다. 이 선수를 판정으로 이기며 1차 방어에 성공했다. 이후는 쉽지 않았다. 폭우를 앞두고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멕시코의 자모라 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군 입대 전 태국에서 수코타이를 고전 끝에 이길 때 매니저 다음으로 날 도와준 분이 있었다. 오운모씨다. 그분을 태국시합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났다. 입대하고 14주의 훈련기간도 지난 이후였다.
“수환아, 내가 요새 미국에 있어. 미국 프로모터 돈 프레이저 밑에서 매치메이커로 일하고 있는데 한국서 시합하지 말고, 넌 적지에서 강하니까 돈 두 배로 받고 미국에서 시합해라. 너 돈 좀 벌게 해줄게.”
“좋지요.”
“그럼, 미국 LA 교포들 많은 데서 타이틀매치를 하자. 거기 자모라라는 멕시코 선수가 있는데 뮌헨올림픽 은메달리스트야. 지금 18전 18승, 18KO승인데 내가 볼 때는 네가 충분히 이기고도 남아. 어때, 한번 해볼래?”
구미가 당겼다. “얼마 받을 수 있어요?”
당시는 세계적으로 밴텀급 타이틀전이 4만 달러 정도면 이루어졌다. 1달러에 500원인 시절이었다.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200만원이면 서울 후암동 변두리, 용산고 입구, 해방촌, 남영동, 청파동, 갈월동 등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자그마치 8만 달러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4000만원. 좋다고 했다. 진행하자고 했다.
상대가 약해서 깔보는 것보다 상대가 강해서 긴장하는 게 낫다. 그래야 연습도 더한다. 맞아도 때려도 소위 복싱하는 맛이 났다.
‘그래, 전승 전 KO승이라….’
긴장감이 온몸에 흘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계 챔피언에 도전할 때는 김준호 선생님 집에서 합숙훈련을 했는데 전 국민, 전 군인의 스타가 된 후엔 그게 어려웠다. 되레 시기를 받는 것 같았다.
복싱 연습을 하기 위해 서울 충무로 수도경비사령부에서 연세대 앞에 있는 고려체육관까지 군 트럭을 타고 다녀야 했다. 그것도 동료들과 트럭 안에 쪼그리고 앉아 이동했다. 내가 세계 챔피언이 되자 수경사는 전에 없었던 쓸데없는 것까지 신경을 썼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어렵게 했다. 나는 ‘제대가 얼마나 남았나’ 하고 날짜를 세곤 했다.
행복지수로 따진다면 세계 챔피언이 아니었던 시절, 홍수환이 누군지도 몰랐던 그 시절 행복지수가 더 높았다. 복싱이 하기 싫어졌다.
그즈음 매니저를 바꿨다. 이전 매니저인 김주식씨는 그동안 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고생해준 김준호 선생님께 부탁했다. 그랬더니 권투위원회는 내가 배신자라며 김준호 선생님을 권투 등록 선수에서 제명했다. 링에 오르기 전에 내란이 생긴 것이다.
당시 한국은 세계 챔피언을 유지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찌됐건 오운모씨 중개로 2차 방어전을 위해 미국 LA로 향했다. 그동안 나와 호흡을 같이했던 김준호 선생님은 그냥 동행인 자격으로 따라갔다. 교포들은 열렬히 환영하면서 반드시 이겨달라고 소망했다. 그러나 나는 자모라 선수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4회전 KO패,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뺏기고 말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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