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년 고시공부 끝에 겸손 배웠어요”… ‘고시촌 예수축제’ 만든 박영목씨

기사 쓰기 연구/#오답노트

by 뻥선티비 2013. 3. 21. 11:24

본문

<after>

시험공부보다 기도를 우선시했던 고시생이었다. '혼자'만 생각하지 않고 '함께'를 생각했던 그는 고시생 기도회를 만들었다. 더 나아가 고시촌을 예수 촌으로 만들겠다며 축제까지 열었다. 그것도 6년간.


그 고시생은 고시에 합격했을까? 서울 신림동 고시촌 예수축제를 주도한 박영목(온누리교회,42) 씨는 시험에 도전한 지 6년 만에 합격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유명한 영화투자배급회사인 시네마서비스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부나 하지 왜 그런 일을?>

"축제를 열자는 것이 제 생각은 아니었어요. 당시 기도 모임에 나갔었는데, 그때 나온 기도제목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주신 생각 같네요."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된 거야?>

박씨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이후 전교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 서울대 법대도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은행에 취직했다. 하지만 사법고시를 보고 싶었다. 사표를 내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한 독서실에 자리를 잡았다.


공부와 더불어 기도도 본격 시작했다. 박씨는 "합심 기도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독서실에 등록하는 날 기도모임을 만들자며 전단 300장을 근처에 뿌렸다.


매주 토요일 기도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현직에 있는 김선화 검사와 단둘이 모였다. 점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30여 명이 됐다.


이때  “우리끼리만 기도하지 말고 부흥 축제를 만들자"는 기도제목이 나왔다. 10여 명이 주축이 됐다. 전단을 뿌리고 다과를 준비하고, 교회를 빌렸다. 


"교회와 지인, 고시원 주인들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함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처음 행사를 열었는데 좌석 450여 석이 꽉 들어차더라고요."


다 좋은데 문제가 생겼다. 6년간 해를 거듭할수록 예수 축제는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박씨는 계속 시험에서 떨어졌다.


"축제만 만든 게 아니고요.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당연히 기도도 했고요. "


박씨는 사법시험 2차에서 계속 떨어졌다. 6년이 지나자 다급해졌다. 그는 '하나님 붙게 해주시면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순서가 문제였어요. 합격해주시면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 그건 아니죠. 어느 날 심인성 질환으로 공부도 못하고 온종일 누워만 있는데 그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기도 내용이 바뀌었어요." 


박씨는 "하나님이 계시면 됐지 시험 합격이 뭐 대수인가요. 불합격도 좋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해는 유독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사범시험에 최종합격했다. 


그는 그때 겸손을 배웠다고 했다. 하나님의 셈범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했다. 하나님은 공부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를 보지 않고 겸손해지는 때를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왜 영화사에서 일을?>

영화사 일을 하게 된 것은 사법 연수를 받을 때 선배의 영화관련 일을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됐다.


박씨는 요즘도 기도하느라 바쁘다. 그는 가는 곳마다 기도모임을 만든다. 시네마서비스에 오자마다 역시 기도회를 조직했다. 


"영화는 문화적 영향력이 굉장히 큰 곳이잖아요. 어느곳보다 절대적으로 기도가 필요하죠."


그는 “벤허나 쿼바디스처럼 복음을 직접 드러내는 영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내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서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다해도 이미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한다"고 말했다.




<before>

[국민일보]|2006-08-29|29면 |05판 |문화 |뉴스 |1153자

지난주 열린 신림동 고시촌 ‘예수축제’를 12년 전에 주도한 당시 고시생은 고시에 붙었을까. 고시촌 예수축제를 처음 열었던 박영목(온누리교회·42)씨는 국내에서 유명한 영화투자배급회사인 ‘시네마서비스’의 부사장이다. 사법 연수를 받을 때 선배의 영화 관련 일을 도와준 것이 직업이 됐다.


“저도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생이었어요. 열심히 공부했고 기도했어요. 예수축제도 만들었으니 금방 시험에 합격할 것 같았죠. 하지만 6년을 공부했어요. 그 시련을 통해 겸손을 배웠어요.”

당시 그의 실력은 매우 뛰어났었다. 중학교 이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고 서울대 법대도 어렵지 않게 입학했다. 신앙도 그랬다.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내고 신림동의 독서실에 처음 등록하던 날,기도모임을 만들자는 전단 300장을 만들어 독서실에 뿌렸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기도모임을 열었다. 하지만 시험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1차에는 붙었으나 2차에는 줄줄이 떨어졌다. “하나님 제발 붙게 해주세요. 합격만 하면 뭐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이어졌다.


“그땐 기도 순서가 문제였어요. 심인성 질환으로 공부는 고사하고 앉지도 못해 하루종일 누워 있게 되니까 기도 내용도 달라지더라고요. ‘불합격도 좋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 줄 아는데 그것이 뭐 대수입니까’라고요.”

박 부사장은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해에 합격했다. 하나님의 셈법은 달랐던 것이다.


고시촌 예수축제도 그가 시험공부하던 때 기획되고 개최됐다. 그가 시작한 기도모임은 처음에는 현직에 있는 김선화 검사와 단 둘이 모였으나 점점 부흥해 최고 30명까지 늘어났다.


“우리끼리만 기도하지 말고 부흥 축제를 만들자는 기도제목이 나왔어요. 10명이 주축이 돼 교회와 지인,고시원의 주인들까지 설득하러 다녔어요. 전단과 다과 등을 준비하고 교회를 빌렸죠. 첫 행사 때 좌석 450여개가 꽉 찼어요.”

박 부사장은 최근에도 기도모임으로 바쁘다. 시네마서비스에 오자마다 기도모임을 만들었다. 문화적 영향력이 큰 영화계에 가장 필요한 것이 기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벤허나 쿼바디스처럼 복음을 직접 드러내는 영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내뿜는 영화를 한번 만들고 싶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내 희망사항일 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과 일이라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