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선 블로그
국민일보 종교국 기자입니다.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를 거쳤습니다. 뻥선 티비, 뻥선 포토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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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14> 조부모로부터 신앙 대물림… 복싱 인생 버팀목 돼

나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 한국에 돌아와 서울 망우리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묘지 비석에 늘 있던 십자가가 그날은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한국 최초의 두 체급 석권. 어릴 때 아버지 배를 치면 주먹이 세졌다고 격려해 주시던 당신. 그 아버지 앞에 꼬마였던 아들이 자랑스럽게 서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복싱 사랑, 함께 보던 앞집 아저씨 복싱시합,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학교 가는 골목길에 붙어있던 복싱 포스터를 보면 으레 그리워졌던 아버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방과 후 계동에서 충무로의 집까지 가면서 보던 한국체육관, 그 체육관에서 연습하던 복서들을 구경하던 일, 김기수 선수가 좋아서 연습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목욕탕까지 따라다니던 일 등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갔다. 

나는 확신한다. 할아버지의 신앙생활, 특히 신의주 제2교회를 세울 때 못질하면서 헌신했던 할아버지의 신앙, 29세 때 남편을 여의고 홀로 4남매를 키우며 성경을 항상 곁에 두고 읽으셨던 할머니의 신앙이 내 복싱 인생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걸 통해 진실로 번성케 하신 것이다. 

나뿐 아니고 여러 세계적인 복싱선수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조지 포먼은 알리에게 지고 난 후 목사가 됐다. 47세에 링에 돌아와 당시 22살이나 아래인 무어 선수와 싸워 10회에 KO시켰다. 그 후 그는 링 중립 코너에 가서 무릎을 꿇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역사상 가장 강한 주먹으로 꼽히는 타이슨이 홀리필드에게 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홀리필드는 11회전에서 KO로 이긴 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님 때문에 이겼다”고 했다.

전 세계가 좋아했던 알리는 1964년 소니 리스턴을 7회 KO로 이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위대하다. 내가 세상을 흔들었다.” 

알리와 포먼을 비교해보자. 알리는 전무후무한 헤비급 3연패를 이뤘지만, 파킨슨씨병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했다. 

반면 포먼은 목회자가 됐을 뿐 아니라 가장 예리한 복싱 해설가로 선수 시절 못지않은 영광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파나마에서의 4전5기 시합은 오직 하나님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전국 교회에서 당시 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는지 간증하고 다닌다. 또 군부대, 기업체, 보호관찰소를 다니며 하나님께 의지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호소한다.

23년이 지났다. 나는 앞으로도 강연을 통해 할렐루야를 외치고 하나님이 시합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증거하며 살 것이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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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마음학교 정재우 목사가 말하는 '상처 치유 잘 안되는 이유'

서울 은평구 대조동 순복음교회를 10년 빨리 은퇴한 정재우(60) 목사가 최근 경기도 하남에 은혜의정원교회를 개척하고 내적 치유학교인 ‘은정마음학교’를 개설했다. 정 목사는 이혼 재혼 별거 등에 있는 부부와 그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특수목회를 하기 위해 올 1월 순복음교회 담임을 사임했다. 

정 목사는 지난 25일 마음학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거친 환경과 예기치 않은 어려움으로 힘겨워하고 있다”며 “이들의 내면을 치유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은정마음학교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교회는 지난 10일 창립 및 입당 예배를 드렸다. 정 목사는 교회사역도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교회’에 맞춰 큐티 목양, 영성사역, 치유사역, 회복사역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수요일 오전에는 ‘소울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치유예배를 드린다. 

이는 사색영성이 기본 바탕이 된다. 사색영성은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묵상 영성’, 공동체적 교제와 격려가 있는 ‘소그룹 영성’,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견고히 하는 ‘예배 영성’, 선교와 복지사역을 통한 ‘섬김 영성’ 등이다. 

은정마음학교는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마음 치유 과정을 운영한다. 마음의 치유, 게임 중독, 부모와 자녀간의 의사소통, 가족 관계 돌아보기, 독서를 통한 치료, 소통 맘 코칭 등을 주제로 2회기 부터 6회기까지 마련돼 있다. 


이명진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 임상교육위원장, 박경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상담복지학과 예술치료전공 주임교수, 홍구화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양희숙 성동상담코칭센터 소장, 정춘순 여의도가족상담센터 소장, 박애리 회복사역연구소 코리더, 안앤지 시와시학사 앤지길 코칭연구소장 등 상담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정 목사는 “하나님의 관심사는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전문 치유 전문 교회와 학교를 세우게 하시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이혼자 회복 및 재혼 코칭에 집중하려 했지만 이외에도 내적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많아 치유사역의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상처를 치유하려면 보통 5단계, 문제 상황 직시, 감정의 흐름 파악, 진실에 직면, 합리적 사고, 성경적인 고찰 등이 필요한데 많은 교회가 중간 단계를 생략한다”며  “그러다보니 상처 입은 이들이 정답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정마음학교는 중간 단계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데 굉장히 효과가 있다”며  “이 시대를 살며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이곳에서 치유되고 회복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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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득 인천 리더스골프 대표 “어린이들에 무료 골프 강습하며 전도합니다”

 

그는 7년째 매년 어린이 40여명에게 무료로 골프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특이하게 일본 야쿠자 때문에 골프를 배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고 ‘골프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레인보우 골프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장재득(71·사진) 인천 리더스골프클럽 대표 이야기다.  

지난 22일 인천 리더스골프클럽에서 만난 장 대표는 “금융위기로 골프장 사업이 망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 전도 소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이 거리에서 거칠게 욕하는 것을 보고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 삶을 변화시키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장 대표는 젊어서 태권도 관장을 지냈다. 어느 날 서울 명동 국립극장 인근 골목을 지나는데 깡패 서너 명이 한 노신사에게 칼을 들이대며 협박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칼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깡패들과 싸웠고 결국 그들은 도망쳤다. 노신사는 일본 유명한 야쿠자의 보스 중 한 사람이었다. 노신사는 “한국에 나오면 보디가드를 해주고 같이 골프도 치자”며 그의 골프 강습을 전적으로 지원했다. 장 대표는 이를 계기로 국내에선 1974년, 해외에선 1997년에 프로가 됐다. 이후 골프 경기에도 나가고 골프 연습장도 여러 곳 운영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였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이 여유 자금을 며칠만 빌려달라고 했다. 며칠이라는 말에 차용증도 없이 가진 돈을 전부 빌려줬다. 하지만 지인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뇌출혈로 쓰려져 사망했다. 장 대표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골프 연습장도 문을 닫고 말았다. 

“갈 곳이 교회밖에 없었어요. 보름간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200만원이 전부였던 그는 담보도 없이 대출을 받아 2010년 지금의 골프 연습장을 오픈했다. 장 대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그리고 2011년 인천 강화도 승영중학교와 인천 남구청 생활체육회 등의 요청으로 초·중 학생들에게 자원봉사로 골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회 아이들에게도 골프를 가르쳤다. 장 대표는 인천 예수소망하나교회(김윤환 목사)를 섬기고 있다. 

 

그는 골프 강습이 복음을 전하는 좋은 도구라는 것을 깨닫고 매주 토요일 어린이 무료 골프 교실을 시작했다. 교회 아이들을 포함해 지역 아동 40여명에게 1년 코스로, 현재까지 300여명에게 무료로 골프를 가르쳤다.  

“아이들과 연습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기도를 하는데 부모들에게 그것이 싫으면 ‘아이들 데리고 그냥 가시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곧 성경공부도 할 계획입니다. 아이들 중에 골프에 달란트가 있으면 선수로 육성도 하고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도 세울 것입니다.”

장 대표는 “내 나이 71세로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면 얼마나 더 쓰시겠냐”며 “내가 가진 모든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쏟아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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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벤처포럼 ‘어!벤처스’ 최종 12팀 선정하고 멘토링

청년벤처포럼 ‘어!벤처스’가 최근 최종 참가팀 12팀을 선정하고 멘토링에 나섰다. 어!벤처스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대회형식의 포럼이다. 페이스 앤 워크 인스티튜트 아시아(FWIA·대표 김윤희)와 크리스천 CEO 포럼(CCF·대표 이남식 수원대 제2창학위원장)이 공동 주최한다.

 선정된 12팀은 설립된 지 3년 미만인 법인들로 위기 청소년, 노인, 탈북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영리 및 비영리 비즈니스 모델들을 선보였다. 하비풀은 수익금으로 노인 치매 예방 사업을 벌이는 온라인 취미강좌 서비스업체다. 그릴백은 멕시칸 음식 프랜차이즈로 이를 통해 탈북 청년들 자립을 돕는다. 와일드스텝 코리아는 위기 청소년을 위한 영국식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전문아웃도어, 팀액티비티, 창의적 활동 등이 포함된다. 연리방앗간은 소망교도소 출소자들의 떡집 창업을 지원한다. 가치먹자는 만성 질환자들을 위해 요리강좌를 서비스한다.

 또 ㈜로비드는 법률 서비스 업체로 의뢰인에겐 합리적인 수임료를, 변호사에겐 공정한 수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변호사 입찰 시스템을 구축했다. 베이비플러스는 아빠의 육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법’ 소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카우카우는 먹어도 안전한 친환경 장난감 키트를 제작·판매한다. 

 이와 함께 공정 무역을 하는 업체들도 눈에 띠었다. 닥터노아는 에티오피아의 대나무를 활용해 칫솔과 치약을 판매한다. 이를 통해 현지 빈곤층에게 도움을 준다. ㈜엠플러스 코스메틱스은 화장품 공정 무역업체다. 

 이외에 ㈜더플랜잇은 식품과학 기술을 활용해 순식물성 대체 식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 DoWith.org는 공교육 혁신 콘텐츠, 커리큘럼, 교육 플랫폼을 제공한다. 

 포럼은 11월 4일 최종 결선대회를 열고 그랑프리 1개팀 등 총 8개팀을 선정한다. 그랑프리에는 700만원 상금과 미국 탐방 기회 등을 준다.

 지난 14일에는 서울시 성동구 한 세미나 룸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최종 선발된 12개 팀과 강명재 CK 인베스트먼트 대표, 조민식 카카오 사외이사, 정운오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등 멘토 70여명이 참석했다. 김윤희 피아 대표는 “세상에는 성공만 쫓거나 부르심을 쫓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며 “이번 벤처포럼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그 뜻을 전적으로 쫓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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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신앙] (주) 비하임/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 임하게…

니트 의류전문 수출회사인 ㈜비하임(대표이사 곽영철)은 창업 때 성경적 경영 원칙 세 가지를 정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첫째 매주 월요기도회를 한다, 둘째 회사 이익금의 10%는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셋째 이익금의 15%는 직원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비하임은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한다’에서 ‘비’ ‘하’ ‘임’을 따온 말이다. 2012년 11월 창업했으며 베트남과 과테말라에서 니트 의류를 생산해 미국에 90%를 수출한다. 지난해 매출은 240억원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회사를 방문했다. 직원들은 회의실에서 새 시즌 상품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그동안 출시한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의 니트들이 걸려 있었다.

곽영철(56) 대표는 “이곳에서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기도회를 연다”고 했다. 기도회에선 공동 기도문으로 기도하고 곽 대표가 마무리 기도를 한다. 매월 첫째주 월요일엔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를 드린다. 

비하임은 월드비전, 안구기증운동협회 등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직원 한 명당 월드비전 후원아동 한 명을 결연했다. 현재 40여명의 어린이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는 생일 맞은 직원의 이름으로 안구기증운동협회에 1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특히 군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군부대 20여곳과 군부대교회 10여곳을 재정 또는 물품으로 돕는다. 2013년엔 한 군부대 도서관에 도서 및 책장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이익금의 15%는 직원들에게 1년에 1∼2회 인센티브 형식으로 주고 있다. 2014년 상반기엔 급여의 500%를 지급했다. 

비기독교인 직원들은 월요기도회를 두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곳이 회사인지 교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곽 대표는 “기도회는 회사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회사가 존재하는 한 유지하겠다”고 선포했다. 직원들이 잘 따라줘 감사하다고 했다. 

곽 대표가 이런 원칙을 정한 건 의류 수출에이전시 ㈜디엔디리미티드 이용기(64) 대표 때문이다. 둘은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회원이다. 이 대표가 곽 대표를 CBMC에 초청했다. 

창업 전만 해도 곽 대표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한 무역회사의 부사장이었는데 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안 이 대표는 전적으로 도와줄 테니 창업하라고 권면했다. 다만 성경적 경영을 조건으로 달았다. 이 대표는 330여㎡(100여평) 사무 공간을 저렴하게 빌려주고 사무 집기도 지원했다.  

곽 대표는 CBMC 구로디지털 지회 총무이며 주사랑공동체교회(이종락 목사)를 섬기고 있다. 그는 “회사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이 대표가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목표나 비전을 묻자 그는 “바람이 있다면 사업이 잘되는 것도 좋지만 해외에 있는 직원을 포함해 전 직원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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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13> 4전5기 기적의 승리… 나 아닌 하나님의 작품

기억이 생생하다. 카라스키야와의 3회전. 카라스키야가 왼손 연타를 칠 때 나는 있는 힘껏 라이트훅을 날렸다. 안 맞았다. 이어 때린 왼손 더블 펀치는 상대의 배와 턱에 적중했다. 그때 내 눈에 카라스키야의 두 무릎이 들어왔다. 반쯤 주저앉았다 일어났다. 제대로 걸린 것이다. 다시 들어가면서 원투를 쳤다. 오른손이 적중했고 홀딩 상태가 됐다. 그때 걷어 올린 두 번의 짧은 오른손 어퍼컷이 결정타였다. 

카라스키야의 눈동자를 보고 링 구석에서 계속 몰아붙였다. 자꾸 주먹이 빗나가 상대를 약간 누르듯 공격했다. 두 번이나 그랬다. 주심은 내게 주의를 주며 카라스키야를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막판에 카라스키야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그가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대로 시합이 끝났다. 4전5기. 아나운서 박병학 장로의 말씀대로 나는 이겼다.  

빨리 한국에 가고 싶었다. 과테말라를 거쳐 미국 LA에 도착해 교포들과 만났다. 2년 반 전 자모라에게 졌을 때의 슬픔 대신 기쁨을 남기고 일본으로 향했다. 747점보기의 기장이 “기내에 파나마에서 다시 세계챔피언이 된 홍수환 선수가 있다”고 방송하자 승객들이 환호하며 박수쳤다.

1등석에 앉아 아버지를 회상했다. 할머니도 생각했다. “너희들은 예수님 믿어야 돼, 예수님 믿으면 복 받아.” 자주 그렇게 말씀했다. 그래서 적지에서 두 번이나 챔피언이 됐나 싶었다. 한 번은 남아공에서 한 번은 파나마에서.  

이기긴 했지만 개운치 않았다. 남들은 ‘4전5기’라고 좋아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직 내가 싸웠던 영상을 보지 못했고 무슨 주먹으로 카라스키야를 KO시켰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큰 트로피를 내 옆에 세우고 승무원들과 축하사진을 찍었다. 즐겁긴 했지만 내가 이긴 것 같지 않고 누군가 나를 이기게 해준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룰 미팅 때 왜 룰이 바뀌었을까. 당초 3번 다운당하면 자동으로 KO로 인정하던 룰이 무제한 다운으로 바뀌었다. 체중을 재고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어떻게 심판을 만나게 됐을까. 네 번 다운당한 후 실컷 맞고 있을 때 선수 보호 차원으로 경기를 중단시켰다면. 큰형은 종 치기 바로 전에 수건까지 던지려고 했다는데 만약 그랬다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서울 서소문 TBC 동양 방송국에 걸린 현수막 글귀가 재미있다. ‘불사신 홍수환’. 

1974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열린 카퍼레이드보다 환영 인파가 2배 더 많았다. 시청 축하 환영회에 참석했다. 그때 비로소 시합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심판의 카운트는 분명히 느렸다. 나를 봐주듯 했다. 세 번째 다운당해 로프에 기댔을 때 심판이 내게 다가왔다. 보통은 선수에게 오라고 부른다. 네 번째 쓰러졌을 때 심판이 내게 와서 물었다. 

“You OK(괜찮나)?” “Slippery(미끄러졌어요).” 

이 부분이 가물가물 생각났다. 심판은 미끄럽다고 들었을까, 미끄러졌다고 들었을까.

그다음 장면에서 나는 이번 승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확신했다. 나를 로프 쪽에 몰아놓고 때리는 카라스키야의 주먹은 있는 힘을 다해 치는 무지막지한 연타였다.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켰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다.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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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12> “수환아, 옥희도 보고 있어”


홍수환 장로가 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에서 열린 카라스키야전에서 4전 5기로 상대를 다운시킨 모습.


드디어 시합 날. 링 위에서 진행된 계체량을 통과하고 빨리 방에 올라가 음식을 먹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기에서 내 시합 심판인 미국인을 만났다.

“Hey, soo! I’m the referee. Good luck today(수환, 내가 심판이에요. 행운을 빌어요).”

“Thank you, but I’m ready for this fight(고마워요. 나는 준비가 돼 있습니다).”

“Where did you learn English(영어 어디서 배웠어요)?”

“High school(고등학교에서요).”

이 짧은 만남은 기적을 만들었다. 왜 시합 하루 전 룰 미팅 때 무제한 다운으로 바뀌었을까. 왜 시합 날 엘리베이터에서 심판을 만났을까. 경기가 끝난 이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합을 앞두고 나는 라커룸에서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때 아나운서 박병학 장로가 나타났다. “수환아, 오늘 시합 네가 이겨. 상대는 펀치가 세지만 턱은 약해. 너는 펀치가 좀 약해도 대신 맷집이 좋잖아. 자모라 봐라, KO로 졌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 안 쓴다.”

나는 이마에 땀이 약간 흐르도록 몸을 풀고 코트라에서 빌린 우리나라 고유의 삿갓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링 위에 올랐다. 카라스키야도 등장했다. 초록색 가운을 입고 올라온 그의 모습은 이미 챔피언이었다. 애국가가 흐르고 결전의 시간이 왔다. 복싱 선수에게 언제가 제일 긴장되는 순간일까. 바로 ‘세컨드 아웃’이다. 선수 둘만 남으라고 할 때다.

“수환아, 5회전만 넘기면 이 싸움은 네 거다.”

조순현 선생님의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링 중앙으로 뛰쳐나갔다. 상대 상체 놀림이 부드러웠다. 주먹도 생각했던 대로 빠르고 가벼웠다. 그리고 강했다. 이제껏 상대를 5회전 안에 모두 보내버린 그런 주먹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니다. 5회전 안에 끝내자. 그게 편하겠다.’ 그것이 나의 작전이었다. 1라운드는 잘 싸웠다. 운명의 2라운드. 상대의 전광석화 같은 왼손이 나올 때 나는 라이트훅으로 응수했다. 아뿔싸! 상대가 오른손 어퍼컷과 왼손 훅으로 나를 받아쳤다. ‘걸렸구나!’ 링 밖에서 선생님이 외쳤다. “침착해!”

나는 이미 링 바닥에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쓰러졌다. 그 정도 되자 파나마 관중은 게임이 이미 끝난 줄 알고 축포를 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심판이 나를 살렸다. 카운트를 천천히 셌다. 가까스로 일어났다. 그때 종이 울렸다. 2회전 끝.

종소리를 듣고 겨우 코너로 왔다. 선생님이 무언가 꺼내 마시게 했다. 미제 군용 암모니아였다. “정신 나게 하는 거다.” 너무 독해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쭉 마셔. 1회전만 더하고 하지 마!”

‘그래, 1회전만 더하고 그만하자.’ 그러고 나서 앞을 보니 상대 코너의 링 줄이 뚜렷하게 보였다. 정신이 좀 든 것이다.

“1회전만 하고 관둬.” 선생님이 또 외쳤다. 선생님은 눈물을 참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릴 기세였다.

“세컨드 아웃.”

선생님은 “수환아, 옥희도 보고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링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래. 총을 맞더라도 등에 맞지 말고 앞가슴에 맞고 전사하자’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소가 너를 받는 게 아니야. 네가 겁먹으니까 소한테 받히는 거지’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겁이 나를 죽이는 거야. 네 주먹 별거 아니야.’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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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11> 국내 방송사 카라스키야戰 KO패 우려 중계 꺼려

누나에게 들은 어릴 때 이야기다. 누나 등에 업혀 미군 지프에서 던지는 초콜릿을 받으려다 개천에 떨어졌다. 누나가 내려가 보니 하나도 안 다쳤다. 누나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말을 안 했는데 이를 본 사람이 엄마에게 얘기해서 크게 혼났다고 했다. 

조금 더 자라선 신문 배달하는 동네 형들을 따라 겨드랑이에 신문을 끼고 찬송가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라’를 부르고 다녔단다. 얼마나 까불었는지 서울 돈암동에 살 때 군인이던 외삼촌이 집 앞에 세워 놓은 트럭에 동생과 올라 장난치다가 큰 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것저것 만졌는데 트럭이 움직이더니 내리막길로 달렸다. 그래서 남의 집을 부숴버렸고 이로 인해 신문 사회면에 처음 이름이 올랐다. 개구쟁이였지만 누나는 항상 내 편이었다. 시합을 앞두고 나를 격려했다. 

“수환아 넌 이겨, 엄마가 너를 낳을 때 얼마나 폭격이 심했는 줄 아니. 그런 속에서도 넌 살았어.” 

엄했던 할머니, 그 할머니가 그토록 열심히 성경을 읽으셔서 그런가, 비참하게 맞고 쭉 뻗어버린 시합은 없었다. 아니면 신의주 제2교회를 섬겼던 할아버지의 헌신이 4전5기 시합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3번을 다운당하면 자동으로 KO패 하는 룰이 있었다. 카라스키야 측은 룰 미팅에서 ‘무제한 다운 룰’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어차피 KO로 끝날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판정을 원치 않았다.

당시 파나마엔 세계 복싱영웅인 로베르트 두란 선수가 있었다. 카라스키야의 인기는 두란을 능가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세계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다들 기대했다. 나는 그들 파티에 제물이었다.  

파나마는 더웠기 때문에 한 체급 올린 체중 감량엔 무리가 없었다. 남은 1주일은 시합 때 있는 힘을 다해 싸울 수 있도록 말수조차 줄여야 한다. 그때 한국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시합 1주일 전인 11월 20일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타이틀전에서 도전자 김태호 선수가 상대 선수 세라노를 다운시키고도 10회전에서 KO로 졌다고 했다.  

또 다른 소식도 들렸다. 같은 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루한 선수가 자모라를 10회 KO로 이겼다는 것이다. 파나마는 복싱의 나라였다. 사파타, 루한, 두란에 이어 카라스키야까지 세계 챔피언이 된다면 파나마는 세계 챔피언 4명을 보유한 복싱 강국이 되는 것이다. 

복싱 연령으로는 늙은 나이 27세, KO율 30%인 내가 그들 잔치의 제물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합을 중계방송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나 마나 뻔한 KO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싱을 좋아하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1주일마다 한국선수가 KO로 지는 것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김태호 선수의 시합을 중계했던 TBC 박병학 아나운서와 김재길 체육국장은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홍수환 시합은 꼭 중계하겠다, 홍수환이 지면 국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온 국민이 복싱을 좋아했다. 세계 복싱계의 동향은 물론 선수 랭킹까지 줄줄 외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판치라인’이라는 복싱 전문지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카라스키야전 중계가 결정됐다. 계체량도 통과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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