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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석봉 (3) 제삿날 덥석 무릎 꿇고 기도하자 온 집안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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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5. 1. 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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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불교 집안을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거듭나게 한 이는 큰누나였다. 누나는 돈을 벌려고 도시에 나갔다가 복음을 접했다. 가끔 집에 들러 교회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 어른들이 단호하게 말했다. “동생들은 건드리지 마라.” 그렇다고 동생들을 가만히 놔둘 누나가 아니었다. 큰누나는 가족 중에 가장 먼저 나를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 데려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우리 집은 물론이고 바로 윗동네에 사는 큰집 어른들이 쫓아왔다. 집안이 망한다는 둥, 동생을 망쳤다는 둥,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정작 누나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갔다. 내 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교회에서 들은 지옥 이야기가 너무나 무서워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친인척 중에는 주지 승려가 있었고 어머니는 보살이었다. 어머니는 내 이름을 대웅전에 올려놓고 좋은 승려를 만들겠다고 치성을 드렸다. 그래서 나는 극락에 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극락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국에 가고 싶었다. 절대로 지옥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특히 손가락만한 구더기가 몸을 뒤덮고 파먹는다는 이야기는 끔찍했다. 생생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구더기였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예수를 믿는 길뿐이라고 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이것이 가짜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1년간 교회에 다니면서 집요하게 질문했다. 왜 부처가 아닌 예수만 믿어야 천국에 가는지 등의 의문점을 물고 늘어졌다. 어른들이 모이는 구역예배에도 참석해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 것은 다 물었다. 그러면서 확신이 들었다. 

주일학교 선생님은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예수를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탄이 방해했다. 아버지는 내가 주일에 교회에 못 가게 밭일을 맡겼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일 아침 일찍 밭에 나가 맡은 일을 하다가 교회에 갔다. 예배가 끝나면 몰래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우리 집의 반대는 그런대로 무시할 수 있었다. 문제는 큰집의 반대였다. 큰집은 딸만 있었기 때문에 나를 양자로 삼았다. 대를 이을 장손이라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집안 어른들은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더더욱 반대했다. 제사를 주도해야 할 장손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앞으로 제사상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나는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지 않기로 했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느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절을 하고 술을 따랐다. 이후에 많이 자책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로 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삿날이 다가왔다. 결심은 했지만 절을 안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 줄 몰라 쩔쩔매는데 큰아버지가 “석봉아, 인사드려라”라고 준엄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순간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절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냥 서 있는 편을 택했다. 선 채로 호되게 야단맞고 그날은 지나갔다. 

또 다른 제삿날이 왔다. 나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해버렸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큰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놔둬라. 이미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으니 제삿밥 얻어먹기는 틀렸다.” 그 다음부터는 절을 강요하지 않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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