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선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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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홍수환 <9> “네가 이겼으면 문제 없었잖아” 조롱에 이 악물어

자모라 선수와 경기를 끝낸 다음 날 서울 남영동 ‘두꺼비체육관’을 찾았다. 인천구치소에 가 있는 형을 생각했다. 그 경기 9회전에서 멕시코 심판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다가 그 장면이 사진에 찍히는 바람에 구속된 것이다. 

자모라 선수의 짧은 왼팔이 어떻게 내 오른쪽 턱뼈를 금 가게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체육관의 한 선배에게 물었다. “형, 내가 왜 그놈 왼손에 그리 맞았지?”

“아니, 네가 그걸 몰라?” “모르겠는데….” “네가 왼손을 뻗으며 들어갈 때 그놈이 왼쪽으로 돌면서 왼손을 뻗었어. 그러니까 들어갈 때마다 오른쪽 턱이 맞더라고.”

‘돌면서 치니까 내 오른손 가드 사이로 파고들면서 오른쪽 턱을 맞힌 거구나.’

그 선배가 또 말했다. “수환아, 내가 보기엔 네 체중도 문제야. 네 몸에 밴텀급은 무리야, 잘 생각해 봐라.” 

한동안 턱이 아파 잠을 못 잤다. 인천구치소에 있는 형을 생각하면 눈물만 나왔다.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봤다. 미국 LA에서 자모라에게 질 때 받은 8만 달러, 4000만원에서 트레이너 두 명 800만원, 매니저 한 명 1200만원을 떼어주고 나머지 2000만원으로 해방촌 목욕탕을 샀다. 자모라를 한국으로 부를 때 이 목욕탕을 팔았다. 돈이 모자라 종로에서 양복점을 하던 이일호 복싱 원로의 도움을 받았다.  

신문 기사는 나를 놀렸다. ‘막 내린 홍수환 시대’ ‘역시 자모라’…. 어느 누구도 억울했던 9회전 상황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결과만 놓고 따졌다. 형님 사건을 담당한 검사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하는 말. “네가 이겼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잖아.” 

귀찮다는 식이었다. 복싱이 크게 인기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커피 한잔 대접받지 못했다. 건성으로 인사만 하고 나와 버렸다. 눈물이 흘렀다. 상대에게 맞은 상처로 엉망인 내 얼굴을 봐서라도 봐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던 큰누나를 찾아갔다. 누나에게 비행기값이라도 달라고 해 외국에 가서 경기하고 이겨서 돌아오고 싶었다. 누나 가게 앞에 다다랐을 때 여성 두 분이 나를 알아봤다.

“어머, 홍수환 선수다. 얼마나 아프세요? 한 번 더 도전하세요.”

그날 나는 두 번 울었다. 인천 검사실 앞에서 억울해서 한 번, 누나 가게 앞에서 감격해서 한 번 울었다. 큰누나에게 돈을 얻어 하와이로 향했다. 일본인 프로모터에게 가서 경기 주선을 부탁했다. 

‘한 번 더 해보자. 반드시 이기리라. 이겨야 원수를 갚는 거다.’ 

상대는 필리핀의 바스케스라는 선수였다. 뛰고 또 뛰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달렸다. 아침에 일어나 뛰는 것은 복싱 선수에게 산삼과 같다. 만장일치로 이겼다.  

그즈음 WBA에서 주니어 페더급을 새로 만들어 초대 챔피언 결정전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귀국해서 염동균 선수와 일본 다나카 선수를 이기고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11전 11승 11KO승의 파나마의 괴물 선수 카라스키야와 한판 붙게 됐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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