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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1)
시각장애인 김종훈씨,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협연 "100% 하나님의 은혜"


시각장애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46)씨는 지난 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장애인페스티벌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옛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협연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1931년 창립된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2년 8월 9일 러시아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양측을 향해 스피커를 설치하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전설’로 남아 있다. 김씨는 이들의 주 연주홀인 그랜드홀에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D장조 35번’을 협연했다. 

김씨는 29일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제가 이렇게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었던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라며 “국내에서만 경기하던 축구선수가 꿈의 무대인 유럽리그에서 뛴 것과 같은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선천성 고도 약시로 태어났다. 생후 8개월 만에 백내장 증세가 나타나 5차례 수술을 했다. 녹내장까지 겹쳐 왼쪽 눈은 실명, 오른쪽 눈은 교정시력이 0.01 이하가 됐다. 가까이 들여다봐야 희미하게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낙심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운 바이올린에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시력이 약해 일반 악보를 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달력 뒷면에 10배 이상 크기로 악보를 그려줬다. 사정을 전해들은 동네 이웃들은 해가 바뀌면 전년도 달력을 모아 김씨 집에 갖다 주곤 했다. 

김씨는 1986년 전국 대회인 부산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한양대 음대에 진학했다. 1994년에는 독일 베를린음대로 유학을 갔다. 유학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혼자 돈을 벌며 학업을 계속해야 했다. 낮에는 개인교습을 하고, 밤에는 잠을 줄이며 연습했다. 이때 바이올리니스트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졸업 후엔 독일 대통령궁 초청 연주회 등을 통해 경력을 쌓았다.

김씨는 힘겹게 배운 음악을 이웃들과 기꺼이 나눴다. 독일 유학 시절인 1996년 ‘한국 장애인 소리예술단’과 함께 일본의 도쿄 오사카 등 5개 도시에서 무료 순회 연주회를 했다. 2001년 귀국 후 지난해까지 서울 한양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매달 두 차례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위한 연주회를 가졌다. 2006년부터 2년여 간 장애인 음악가 4인과 함께 음악봉사단체 ‘희망으로’를 조직해 활동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했고 2011년부터 2년여 간 경기도 수원 에이블아트센터에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가르쳤다. 

전문 연주자로서의 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초청으로 귀국독주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협연했고 2009년에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무대에도 섰다. 

한빛예술단에는 지난해 4월 합류해 한빛오케스트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며 한빛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주평강교회(정귀석 목사)를 섬긴다.

김씨는 앞으로도 이웃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장애를 극복한 연주자로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많은 이들에게 증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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