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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증가교회 ‘갈등 끝’ 4년 만에 아름다운 화해… 담임목사 대물림 싸고 분열됐던 성도들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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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선티비 2014. 9. 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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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2개월 동안 원로목사의 아들 청빙 문제를 놓고 분란에 싸여 있던 서울 서대문구 거북골로 증가교회(백운주 목사)가 극적으로 화해했다. 이 교회의 아름다운 동행은 분열된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성도들은 2010년 4월부터 편을 가르고 싸웠다. 한쪽은 원로목사의 아들 청빙을 지지했고 다른 한쪽은 ‘목회자 세습’이라고 반대했다. 원로목사는 은퇴하고 아들 청빙도 무산됐지만 여파는 이어졌다. 그동안 담임목사를 청빙하지 못했고, 성도는 1300여명에서 800여명으로 줄었다. 2011년 6월 백운주 목사가 청빙됐지만 갈등은 계속됐다. 

화해의 실마리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왔다. 고민을 거듭하던 백 목사는 성경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이 공부할 때냐, 심방하고 사람들을 만나 화해시켜야지”라는 주변의 지적에 백 목사는 “말씀이 역사해야 회복된다”고 설득했다.

먼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주제로 ‘신앙의 본질’ 5주, ‘교회의 본질’ 5주 등 10주 과정으로 화요일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600여명이 수강했다.

“중반쯤 되니까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온화해지고, 성경공부 마지막 시간에는 자발적으로 케이크와 떡을 준비해 종강을 축하했어요.” 성경 말씀이 성도들을 감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성경공부를 한 이후에도 성도들의 이탈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어느 날 백 목사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조직검사 결과 암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2주간 요양을 하고 교회로 왔는데 분위기는 또 달라져 있었다.

“백 목사 잘못도 아닌데 병을 얻었다는 측은지심이 교회 내에 널리 퍼졌던 것 같아요. 그때 ‘목사가 아픈 것도 은혜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성경공부를 체계화했다. 부목사가 지도하는 ‘신앙 베이직반’, 이 과정을 이수한 성도를 대상으로 담임목사가 지도하는 ‘제자대학’을 신설했다. 지금까지 3학기를 진행했다. 

그러다 올 초 시무장로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 것이 화해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제 과거에 매이지 말자’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김천일 선임 장로가 임시 당회 때 시무장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른 장로들도 공동책임을 지겠다며 사임했다.

김 장로는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와 같다는 성경 말씀이 계속 떠올라 괴로웠다”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성도 대표인 장로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로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일마다 식당 봉사를 하고 주차 안내를 했다. 격주로 수양회에 모여 참회의 기도회도 열었다. 당회가 하나 되지 못한 것, 빨리 수습하지 못한 것, 교인들 뜻을 받들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문을 썼다. ‘참회의 주일’로 선포한 지난 6월 29일에는 장로 대표들이 전 교인들 앞에서 참회의 기도, 참회의 글을 낭독했다. 

백 목사는 “1·2·3부 예배 때마다 장로들이 성도들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며 “이에 성도들도 함께 울고 감사의 박수, 희망의 박수를 쳤다”고 말했다.

증가교회는 지난달 전교인 수련회를 다녀왔다. 수련회의 효과는 컸다. 김 장로는 “기대보다 많은 성도가 참석해 말씀에 은혜 받고 공동체 게임 등으로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백 목사는 “이 수련회는 갈등 중에 있던 지난해 말 당회 때 일정을 잡았는데, 화해의 완결편이 됐다”며 “하나님의 타이밍은 아주 절묘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 싸우면서 성전을 완공하고 고소 한번 하지 않은 성도들을 보며 우리 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확신했다”며 “그만큼 순수한 분들인 성도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증가교회는 교회가 갈등을 빚을 당시, 목회자도 없이 1300여석의 예배당을 갖춘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성전을 신축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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