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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석봉 (5) 고된 막노동에도 “성경공부·전도가 내 삶의 길”

서울 마포구 신수동 마포소방서 근처에 내가 20대부터 지금까지 섬기며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어린이전도협회 서서울지회 사무실이 있다. 어린이전도협회는 미국에서 시작한 어린이전도사역단체로 한국에는 1957년에 들어왔다. 현재 전국에 49개 지회가 있고 한 해 평균 어린이 40만명 이상을 전도하고 있다.

나는 서울 은평구 역촌동 반석성결교회(이길우 목사) 장로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훈련하셨다. 나도 신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 가족은 모두 인천으로 이사했다. 나는 용접 일을 계속했다. 조선소, 자동차공장, 컨테이너 공장 등에서 용접했다. 막노동도 했다. 매일 고된 일을 반복했지만 그 와중에도 성경을 공부하고 싶었다. 나는 누나가 섬기던 서인천교회(현 선목교회)에 다니면서 청년 대여섯 명과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토요일마다 모였다. 성경공부는 7년간 이어졌다. 그러면서 성경을 바라보는 내 눈이 열렸다. 성경을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때 함께 한 청년들도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지금 각 교회의 장로나 권사가 됐다.

말씀을 공부하면 할수록 전도를 하고 싶었다. 교회는 각 가정을 방문해 문틈에 주보를 꽂아 놓는 식으로 전도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효과가 없었다. 나는 교회 전도사에게 전도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 전도사는 내게 한국어린이전도협회를 소개했다. 전도에 대한 내 열정을 바로 봤던 것 같다. 나는 협회에 소속된 청년 7명과 한 팀을 이뤘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어린이들을 전도했다. 소속 교회도 소속 교단도 달랐지만 인천에 사는 어린이는 한 명도 빠짐없이 복음을 듣게 하겠다는 열정으로 전도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쉽게 전하기 위해 재미있는 그림책도 개발했다.

인천 주안에 있던 시민회관(현 옛시민회관 쉼터)을 빌려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전도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각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대관비를 마련하고 지역 아이들 3000여명을 초청했다. 인형극을 보여주고 복음을 전했다. 또 이렇게 알게 된 아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말씀으로 양육했다. 

거주지를 서울로 옮겼다. 공장에 취직했고 막일을 했다. 배운 게 없어 하는 일은 비슷했다. 나는 항상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았다. 월급도 안 올랐고 승진은 꿈도 못 꿨다.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성경을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신학을 공부하자고 생각했다. 당시 다닌 교회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반석성결교회다. 현재는 역촌동으로 이전했다. 나는 고 김용련 원로목사를 만나 상의하고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측의 무인가 신학교에 입학했다.

김 원로목사는 내게 특별한 분이다. 나의 영적인 멘토일 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를 연결해 준 분이다. 아내도 이 교회를 섬겼다. 대학에서 유아교육과를 전공한 아내는 이 교회의 관인유치원인 반석유치원 교사였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 그래서 가끔 일로 만나곤 했다. 유치원의 이런저런 것을 고쳐야 할 때 아내는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유치원 아이들 사진도 내가 찍어줬다. 그러면서 친해졌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교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을 뿐이지만 아내는 대졸 출신이었다. 학벌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학벌을 놓고 볼 때 우린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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