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노점상은 좋은 자리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자리일수록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훼방꾼이 있고, 주변 상인들의 견제도 상당하다. 그래서 돈 없고 백 없는 노점상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게 쉽지 않다. 내 뒤에는 돈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셨다.
서울 더프라자호텔 인근에서 토스트를 파는 것은 주변 상인들의 방해로 포기했다. 서울시청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이 없었다. 토스트가 잘 팔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세종대로 큰길가로 나왔다. 서울파이낸스센터와 서울시청 사이에 스낵카를 댔다. 토스트가 잘 팔렸지만 1주일 후 서울 부시장이 와서 “장사를 하시는 것은 좋은데 시장도, 장관도 이곳을 왔다갔다 하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뉴국제호텔과 공사 중이던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에 차를 댔다. 앞에는 코오롱 사무실 건물이 있었다. 이번에는 코오롱 회사의 경비가 정색하며 “여기서 장사하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조금 후 검은색 세단이 들어왔는데 코오롱 회장이 탄 차 같았다. 난리 칠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1주일을 눈치 보며 버텼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오롱 회사의 한 과장이 오더니 “회장님이 젊은이가 밥 먹고 살려고 하는데 그냥 놔두라고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장사가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공사 중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1주일만 더 해보고 자리를 옮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오롱 직원 두 명이 토스트를 사면서 ‘이 집 토스트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열심히 사 먹을 게요. 우리 회사 직원들 많아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조금 더 버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깡패의 행패, 단속이 문제였다. 구청 단속반이나 경찰에 걸리면 장사도 못 하고 과태료와 벌금만 10만∼20만원 나갔다. 벌금 한 번 내면 장사해봐야 손해였다.
어느 날은 장사를 나가려고 시동을 켰는데 겁이 덜컥 났다. “아빠, 이것 좀 사줘”라고 아이들은 뒤에서 조르는 것 같았고, “얼른 자리 빼세요”라고 단속반은 윽박지르는 것 같았다. 2시간여를 꼼짝 못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세요. 음식 솜씨도 좀 주세요.” 이때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머리를 스쳤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나는 이 말씀에 큰 위로를 받고 정면돌파를 결심했다. 먼저 옷부터 바꿨다. 남대문시장에서 호텔 주방장 옷을 사서 입었다. 이전에는 누더기를 걸쳤다. 없어 보여야 돈이 적게 뜯길 것 같았다. 또 창피하니까 넓은 챙의 모자를 썼다. 이 모자도 벗었다. “이왕 창피 당할 거면 확실히 창피 당하자. 비록 노점상이지만 한국에서 토스트 굽는 프로가 돼 보자”고 결심했다.
주방장 옷을 입었다고 오던 깡패가 안 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긴 원래 내 자린데 감방 갔다 오니까 당신이 있네. 다른 말 않겠어. 내 자리니까 돈 내놔.” 나는 이 문제도 프로답게 대처하자고 생각했다. 방법은 미소였다. 묵묵히 식빵을 구우며 사내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욕하고 위협하며 자릿세를 요구했지만 나는 “아, 오늘 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깡패의 태도가 바뀌었다. “형씨 알고 보니 가난한 사람 많이 돕는다며. 원래 여기 내 자리인데, 당신이 그냥 해”라고 했다. 그 뒤부터 이 깡패가 다른 깡패들을 막아줬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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