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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종교국 기자입니다.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를 거쳤습니다. 뻥선 티비, 뻥선 포토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경의 열매] 김석봉 (9) “첫 손님에게 판 수익은 무조건 선교 예물로”


노점상이었지만 내게 몇 가지 소소한 원칙이 있었다. 먼저, ‘첫 손님에게 판 수익은 무조건 선교 예물로 드린다.’ 첫 손님이 여러 명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돈을 별도로 모았다가 극동방송에 전파선교기금으로 보냈다.

또 ‘하루 수익의 십일조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 이 돈으로는 고아원, 독거노인, 노숙인 등 불우이웃을 도왔다. 이를 통해 내게 있던 거지 근성을 없애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번 돈으로는 생계만 유지하고 적금도 들지 않았다. ‘장사는 오전까지만 한다’는 원칙도 지켰다. 오후에는 주변의 다른 상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주변 상인들이 처음에는 이 마음을 몰라주더니 나중에는 단골이 됐다. “장사하러 나오느라 항상 아침을 못 먹고 오는데 아침을 챙겨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또 ‘단속반이 와서 자리를 빼라고 하면 무조건 뺀다’도 원칙 중의 하나였다. 이 원칙을 지켰더니 단속반원이 내 편이 됐다. 단속반원이 어느 날 내게 사무실에 들르라고 했다. 갔더니 커피를 타 주면서 “보통 단속을 하면 소리 지르면서 ‘저쪽은 놔두고 나만 갖고 그런다’며 생떼를 쓰는데 당신은 아무 소리 없이 가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했더니 “단속을 안 할 수는 없고…”라며 안타까워했다.

청결하고 몸에 좋은 재료만 쓰겠다는 원칙도 있었다. 단속에 걸려 법원에 들락날락할 때였다. 법원은 항상 위생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노점상이지만 청결을 하나의 원칙으로 세우고 굽는 판을 철이 아닌 스테인리스로 교체했고, 건강을 생각해 설탕과 조미료를 없앴는데 위생법 위반이라니….’

나는 또 영어 일어 중국어 등 한 국가마다 20문장을 외워 외국인 고객에게도 토스트를 팔았다. 토스트를 한 개라도 더 팔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국의 토스트를 알리겠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나는 재판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최후진술을 위해 밤새 준비했다. 그리고 재판장에게 “재판장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라고 허락을 구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제 노점이 불법인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항상 청결하게 유지했고 시청 부근이라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노점상에 대한 인식을 좋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무교동 5대 명물로 인정받고 일본의 가이드북에도 올랐습니다.”

재판장은 이렇게 시작한 내 말을 가로막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5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마나 긴장했던지 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재판장은 “그래도 노점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청결하려는 원칙과 외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마음을 잃지 마세요. 그래도 벌금은 물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벌금을 4분의 1로 깎아줬다. 그때 나는 큰 용기를 얻었다. ‘미리 고민하고 겁낼 필요 없구나. 정면 돌파도 길이구나.’ 

노점상 연봉 1억 신화로 나는 언론에 여러 번 노출됐다. 첫 번째는 정말 의외의 일로 신문에 났다. 1998년 ‘스포츠서울’의 사회면에 게재됐다. 게릴라성 폭우로 길이 안 보일 정도였지만 그날도 스낵카를 끌고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손님도 거의 없었다. 한 손님이 오더니 “폭우 때문에 사람도 없는데 오늘은 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이 시간에 이 자리를 지키는 것도 고객과의 약속”이라며 “단 한 분이 와도 그분을 위해서 토스트를 팔겠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전화번호를 적어갔다. 그 손님이 서울신문 기자였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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