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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석봉 (10) ‘이웃에 도움 주는 노점상’ 언론 스포트라이트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운지 몰랐다. 서울신문 사회면에 고객과 약속을 지키는 노점상으로 보도되고 무교동의 토스트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나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데 성공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방송에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노점상 ‘석봉 토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SBS의 다큐 ‘세상이 아름다워’의 피디가 방송을 찍자고 했으나 고사했다. 세 번을 찾아왔다. 그래서 내가 방송에 출연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많은 사람이 힘들다며 자살하고 있다. 그런데 노점상이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남들까지 돕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큰 힘을 얻겠느냐”고 했다.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촬영하고 방송에 나갔다. 전국에서 전화가 왔다. “대단하다” “감사하다, 너무 큰 힘이 됐다”등의 내용이었다. 그중에 특별한 분이 있었다.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끊지 마세요”라고 절규하듯이 말했다. 여성이었다. 큰 기업을 운영했던 회장이었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망하고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었고 거의 폐인이 됐다고 했다.

“자살을 두 번 시도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자살을 시도하려는 차에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봤어요. 그리고 노점상을 하는 당신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살아야겠다. 당신 때문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너무 고맙습니다.”

울먹이면서도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그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멍했다. 순간 피디가 내가 왜 방송에 출연해야 하는지 설명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앞으로 방송 출연도 열심히 하자고 결심했다. 이후 이 방송, 저 방송을 탔다. 다큐뿐 아니라 뉴스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2002년 MBC 11시 뉴스, 2004년 SBS 8시 뉴스가 ‘돈을 벌어서 이웃을 돕는, 희망과 꿈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는 요지로 나를 소개했다. 어릴 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고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찬양이 생각났다. 본의 아니게 그대로 된 것이 꿈만 같았다.

SBS 뉴스는 집에서 식사하며 봤다. 내 이야기인데도 감동했다. 그때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보게 됐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내가 살아온 과정이 머리를 스쳐 갔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지 말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일하러 나가시면서 “거지가 우리 집에 오면 빈손으로 보내지 마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우리도 감자, 보리쌀 등으로 연명하다시피 살았지만 거지가 오면 있는 것을 나눠줬다. 방송이 나온 날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당시 나는 내게 너무 비관적이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너는 매일 왜 그러냐.”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상처받았다. 그날 저녁에는 “너 정말 잘했다, 계속 이렇게 잘 가보자”고 내게 칭찬하고 격려했다.

2004년 KBS2 ‘VJ 특공대’에도 나왔다. 그 방송의 여파도 대단했다. 5시간 동안 일하는 모습,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 화장실은 언제 어떻게 가는지까지 다뤘다.

그 고객 이야기도 하고 싶다. 단골손님으로 매일 토스트를 드시러 오셨는데, 몇 개월 만에 노점을 찾았다. 그는 그동안 결혼하고 임신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면서 석봉 토스트의 맛을 도저히 잊지 못해 벼르고 별러 남편 출근시키고 왔다고 했다. 나는 토스트 몇 개를 선물로 싸드렸다. 이때부터 고객 만족 서비스에 대해 더 연구하게 됐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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