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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밤 인천에서 목회자와 독거노인 실랑이



24일 밤 10시 인천 주안동의 허름한 주택가 골목.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10여명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70대 중반의 한 할머니와 50대 여성이 옥신각신했다. 할머니는 “아녀, 아녀, 아니래도. 이렇게 좀 혀봐”라며 상대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여성은 “이러시면 안돼요”라며 할머니 손을 뿌리치려 애썼다.

이 여성은 인근에 있는 행복한교회 담임 김경임(53) 목사다. “할머니께 성탄 선물을 드렸는데 자꾸 용돈을 주시겠다고 이러시네요.” 김 목사가 난처한 듯 말했다. “할머니, 이러시면 저희들 다시 못 와요.” 김 목사 일행은 도망치듯 나섰다. 문밖 50m까지 따라 나선 김옥심(76) 할머니는 혼잣말로 “매번 이렇게 신세만 져서 어떻게 하나”라고 했다. 할머니는 김치 한 통과 파스를 성탄 선물을 받았다. 지금 꼭 필요한 품목이다.


행복한교회는 지역 통장의 도움을 받아 이날 소외계층 44가정에 가장 필요한 선물을 준비했다. 라면, 보쌈,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이다. 아이들은 케이크를 받고 가장 기뻐했다. 3개조로 나뉜 교회 성도 25명은 저녁 8시부터 자정 즈음까지 지역의 소외 이웃들을 찾아 성탄 선물을 전했다. ‘고요한밤 거룩한 밤’ 등의 찬양을 불러주며 축복했다.

맹정자(82)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땐 악취가 풍겼다. 성도들은 평소 ‘대우빌라 할머니’로 부르며 김치, 부탄가스 등을 제공해왔다. 현관을 통해 들여다 본 할머니 집 거실은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로 덮여 있었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모든 것에 집착하는 분”이라고 김 목사는 귀띔했다. 성도들은 맹 할머니에게 라면 한 박스를 선물하고 포옹했다.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행복한교회는 13년 전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성탄절 이브에 소외지역을 다니며 캐럴을 부르고 선물을 전달하는 새벽송 행사를 열고 있다. 선물은 라면이 많았다. 가스나 전기가 없는 가정에서 밥을 하려면 돈이 더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새벽송 행사 때 선물을 드렸던 한 40대가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생활이 어려웠던 그는 취업 후 명절 때마다 과일 한 상자를 보내왔다. “목사님만 드시라”며 매번 전화했다. 그런데 4년 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 어머니가 설·추석에 시골에서 올라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교회는 새벽송을 부르러 가기 전에 초청 잔치도 열었다. 시골에서 잔칫날 돼지를 잡듯이 돼지 3마리를 통째로 사다가 굽고 삶아냈다. 지역주민 147명을 초청해 숯불고기, 보쌈, 잔치국수를 대접했다.

김 목사가 이처럼 지역의 소외 이웃을 챙기는 것은 그 역시 어려운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 후 3년 즈음, 그는 몇 안 되는 성도에게 반찬으로 김치라도 먹여야지 싶었다. 그래서 남들 못 알아보게 모자를 눌러쓰고 시장으로 향했다. 다듬고 남은 배춧잎을 줍기 위해서였다. 그는 배춧잎을 자전거에 싣고 오다 길거리에서 오열했다. “내가 목회자인데, 어려울수록 기도를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는 것. 김 목사는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예수님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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