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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세상의 빛과 소금 100년… 신촌 창천감리교회 창립 기념예배

기사 쓰기 연구/#오답노트

by 뻥선티비 2013. 3. 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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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 [신문 기사로 배우는 글쓰기/#행사관련 ] - 샘플/구세군이 한국선교 100주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after>

서울 창천동 창천교회가 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창천교회가 어떤 곳인데?/

창천교회는 일본강점기 때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교회다. 제3대 이필주 담임목사는 1919년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였다. 교회도 당시 비밀리에 반일운동을 전개했다. 또 1973년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3·1운동 기념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뭘 봤길래..본 걸 이야기해봐/

창천교회는 27일 본 교회 본당에서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앞으로도 민족교회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다짐했는데?/

박춘화 담임목사는 “민족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교회는 청년 선교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창천교회를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며 “선교하는 교회, 교육하는 교회, 봉사하는 교회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밝혔다.


신경하 감독회장은 ‘희망으로 세워진 교회’라는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면서 “창천교회는 감리교회의 모 교회 중 하나로 많은 교회의 모범이 돼왔다”면서 “앞으로도 교회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더욱 헌신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인들은 100주년 기념 공동기도문을 봉독하며 선교 2세기의 새 출발을 알렸다. 


공동기도문은 뭔 내용인데?

기도문에는 “선교 2세기를 맞은 창천교회가 가슴 벅찬 감격을 안고 더욱 젊어지는 교회,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며 이 시대를 속량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적혀있었다.


교회가 하는 것 또 없어?

창천교회는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지난 3월 창천 문화 쉼터 아카데미를 개강했다. 시각장애인 100명에게 무료 개안수술도 진행했다.


이달 초에는 시,그림,사진,서예전을 열고 이웃을 초대 나눔잔치를 열었다. 26일에는 축하음악회를 마련했다. 또 29일에는 금강산에서 통일 염원기도회를 연다. 11월에는 성극단 맑은내의 창작음악극이 마련된다.


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창천교회는 1905년 설립됐다. 한국의 첫 감리교회인 정동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한 노경준 박인래씨가 은혜를 받고 재산을 기증해 예배당을 세웠다. 


*아래 기사 중 하디 선교사의 영향, 정동교회와의 관계 등이 명확하지 않음.



<before>

[국민일보]|2006-08-28|29면 |05판 |문화 |뉴스 |1063자

서울 창천동 창천교회가 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의 첫 감리교회인 정동교회 부흥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은 노경준 박인래씨 등이 당시 창내마을에 세운 교회로 일제 때는 민족교회로 우뚝 섰다.


박춘화 목사는 27일 본당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예배에서 “민족교회로서의 맥을 이어 이 민족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선교에 앞장서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경하 감독회장은 ‘희망으로 세워진 교회’란 메시지를 통해 “창천교회는 감리교회의 모교회 중 하나로 여러 교회의 모범이 돼왔다”면서 “희망을 주는 교회,하나님께 더욱 헌신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창천교회 교인들은 100주년기념 공동기도문을 봉독하며 선교 2세기의 새 출발을 알렸다. 교인들은 기도문에서 “선교 2세기를 맞은 창천교회가 가슴벅찬 감격을 안고 더욱 젊어지는 교회,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며 이 시대를 속량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창천교회는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지난 3월부터 창천 문화쉼터 아카데미를 개강했으며,시각장애인 100명에게 무료로 개안수술을 해주었다. 8월에는 시,그림,사진,서예전을 열었고 이웃을 초대해 나눔잔치도 베풀었다. 26일에는 축하음악회를 마련해 모든 교인들이 은헤를 나눴다. 29일에는 금강산에서 통일염원기도회를 갖는다. 11월에는 성극단 맑은내의 창작음악극이 공연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창천교회는 1903년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영적각성 운동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1905년 성령의 역사로 정동교회에 성도들이 급증하자 노경준씨는 당시 최병헌 목사의 권고를 듣고 재산을 기증해 예배당을 세웠다. 민족운동에도 앞장섰던 창천교회는 1919년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였던 제8대 이필주 담임목사를 주축으로 비밀리에 반일운동을 전개했다. 또 1973년 한국교회 사상 첫 3·1운동 기념예배를 드려 민족교회의 맥을 이었다.


박춘화 목사는 “창천교회를 통해 많은 영혼들을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며 “선교 2세기는 선교하는 교회,교육하는 교회,봉사하는 교회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밝혔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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