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2006-06-23|31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402자
1999년 8월,터키 지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간 현장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통째로 무너진 건물들,그 집더미속에서 그나마 쓸 만한 가재도구를 꺼내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하나님은 그런 속에서 기적을 만드셨다.
현장에 마련된 진료센터에 5세 된 여자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 여자아이는 얼굴이 까무잡잡하니 병색이 짙었고 눈은 황달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급성 간염이었다. 나는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키라고 말했다.
“저는 이번 지진으로 집은 물론 아내조차 잃었습니다. 돈도 없고 그나마 은행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입원을 하란 말입니까? 이곳에서 그냥 치료해주십시오.”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간염환자는 간기능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안정을 취하는 게 최고다. 그런데 텐트에 간기능을 체크할 장비가 있을 턱이 없었다. 사실 진료센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너무 불쌍합니다. 주께서 직접 치료해주십시오.”
나는 일단 그 아이의 팔에 링거를 꽂고 안정을 취하도록 탁자에 눕혔다. 1시간여가 지났을 때였다. 다른 환자를 보다가 힐끗 그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눈의 황달이 엷어진 것이었다. 열도 내리고 눈이 또렷또렷해진 것이었다. 그냥 포도당 주사 하나 맞은 것뿐인데 말이다.
점심 때에는 황달이 거의 없어졌다. 주위 사람들이 다들 놀랄 정도였다. 기적이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못 먹던 그 아이가 일어나 앉더니 빵을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완전히 황달이 없어진 3일째 되던 날 터키 정부 관리가 왔다. 전염병 조사를 나왔다고 했다. 그 애가 전염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국립병원에 데려가서 무료로 치료하겠다고 했다. 잘된 일이었다.
그런데 보호자가 관리에게 막 화를 냈다. 보호자는 허름한 진료센터에서 치료를 계속 받겠다고 했다.
“정부에서 뭐 했느냐. 정부 못 믿겠다. 내 주치의는 저 한국사람”이라며 항의했다고 통역자가 전했다.
며칠 후 아이가 거의 완치되자 아버지는 딸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 인사는 터키에서 가장 존경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이 왜 여기에서 봉사하는지 알아요. 당신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요. 기도 안하고 성경을 안 펼쳐도 나는 알 수 있어요. 나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나도 예수 믿기로 결심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약만 나눠주는 단기선교를 가서 뭐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장기선교사가 더 좋긴 하다. 그러나 단기사역을 통해서도 이렇듯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영혼 하나를 구원할 수 있다면 단기사역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단기사역을 가는 우리가 더 은혜를 받는다. 다른 나라에 갔을 때도 그랬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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