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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재난 전문의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동수 교수 (10)

[국민일보]|2006-06-23|31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402자

1999년 8월,터키 지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간 현장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통째로 무너진 건물들,그 집더미속에서 그나마 쓸 만한 가재도구를 꺼내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하나님은 그런 속에서 기적을 만드셨다.


현장에 마련된 진료센터에 5세 된 여자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 여자아이는 얼굴이 까무잡잡하니 병색이 짙었고 눈은 황달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급성 간염이었다. 나는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키라고 말했다.


“저는 이번 지진으로 집은 물론 아내조차 잃었습니다. 돈도 없고 그나마 은행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입원을 하란 말입니까? 이곳에서 그냥 치료해주십시오.”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간염환자는 간기능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안정을 취하는 게 최고다. 그런데 텐트에 간기능을 체크할 장비가 있을 턱이 없었다. 사실 진료센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너무 불쌍합니다. 주께서 직접 치료해주십시오.”

나는 일단 그 아이의 팔에 링거를 꽂고 안정을 취하도록 탁자에 눕혔다. 1시간여가 지났을 때였다. 다른 환자를 보다가 힐끗 그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눈의 황달이 엷어진 것이었다. 열도 내리고 눈이 또렷또렷해진 것이었다. 그냥 포도당 주사 하나 맞은 것뿐인데 말이다.


점심 때에는 황달이 거의 없어졌다. 주위 사람들이 다들 놀랄 정도였다. 기적이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못 먹던 그 아이가 일어나 앉더니 빵을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완전히 황달이 없어진 3일째 되던 날 터키 정부 관리가 왔다. 전염병 조사를 나왔다고 했다. 그 애가 전염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국립병원에 데려가서 무료로 치료하겠다고 했다. 잘된 일이었다.


그런데 보호자가 관리에게 막 화를 냈다. 보호자는 허름한 진료센터에서 치료를 계속 받겠다고 했다.


“정부에서 뭐 했느냐. 정부 못 믿겠다. 내 주치의는 저 한국사람”이라며 항의했다고 통역자가 전했다.


며칠 후 아이가 거의 완치되자 아버지는 딸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 인사는 터키에서 가장 존경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이 왜 여기에서 봉사하는지 알아요. 당신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요. 기도 안하고 성경을 안 펼쳐도 나는 알 수 있어요. 나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나도 예수 믿기로 결심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약만 나눠주는 단기선교를 가서 뭐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장기선교사가 더 좋긴 하다. 그러나 단기사역을 통해서도 이렇듯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영혼 하나를 구원할 수 있다면 단기사역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단기사역을 가는 우리가 더 은혜를 받는다. 다른 나라에 갔을 때도 그랬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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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하나님 말씀대로 가정서 훈육하는 것은 축복”… 브랜트 모리 목사의 고언

[국민일보]|2006-06-23|28면 |05판 |문화 |뉴스 |1641자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에서 훈육하는 홈스쿨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훈련하며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섬기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을 연마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건강한 가정,건강한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최근 방한한 브랜트 모리 목사는 자녀 10명을 홈스쿨로 키우고 있는 미국 가정사역자다. 그는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먹고 마시는 가정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건강한 가정의 모델이 되고 있다.


모리 목사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우리 아이들은 아침 예배로 시작해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으며 지혜를 얻는다”고 말했다. 또 집안일과 농장일을 하면서 책임과 협동에 대해 배운다고 밝혔다.


모리 목사는 “음악은 대단히 중요한 사역 수단으로 10명의 자녀들이 모두 음악을 사랑하고 악기를 열심히 연습한다”며 “가족음악회를 열거나 초청 공연에 참석해 은혜를 나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홈스쿨에서 가르치면 사회성을 배우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1주일에 한번씩 인근 학교에 가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요양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면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고 밝혔다. 또 지역 공동체의 음식 배급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른 이들을 섬긴다고 말했다.


가정이 행복해지는 비결에 대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부모와 형제간의 존경,섬김을 충만하게 하는 것”을 꼽고 있다면서 “돈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모리 목사 자신은 실제로 가난하다고 했다. 지금 사는 집은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가족들의 노동력으로 직접 지었고 집을 짓는 2년 동안은 트레일러에서 살았다. 가축과 야채도 길러 자급하며 가공식품 등은 일절 먹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옷은 만들어 입고 이발과 기본적인 수선·수리도 직접 해결한다.


그는 “10명의 아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시 127:3)이란 말씀처럼 자녀를 낳는 것은 축복이며 결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양육비 교육비 등 돈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비싼 교육에 집착하는 것은 훗날 자녀를 통해 보상 받으려는 부모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좋은 교육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얼마든지 많은 자녀를 낳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녀의 음악 교육을 예로 들며 “모두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지만 레슨 비용을 많이 들인 적이 없다”면서 “부모와 형제,이웃을 통해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을 배운 것이 거의 전부”라고 말했다.


모리 목사는 1981년 아내 타미카와 결혼해 페이스(24) 한나(22) 조사야(20) 세스(18) 리아(16) 체리시(14) 에스더(12) 크리스천(10) 리디아(8) 네이튼(5) 등 10남매를 두고 있다.


맏딸과 둘째딸 페이스와 한나는 홈스쿨로 배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실력으로 개인 레슨을 하고 있다. 조사야는 항공분야에 관심이 많아 항공역학을 공부하면서 파일럿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전병선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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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재난 전문의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동수 교수 (9)

[국민일보]|2006-06-22|31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507자

하나님의 은혜로 쾌유되길 바랐던 소연이는 토요일에도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소연이 어머니가 회개하고 함께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도,나도 거의 포기 상태였다.


교회학교 아이들을 위해 부활절 달걀을 준비하면서 나는 소연이 것도 만들었다. 부활절 아침예배를 드리고 달걀 바구니를 들고 병실로 향했다. 걱정이 됐다. 의식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소연이가 “계∼란”이라며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병원은 전도의 ‘황금어장’이다. 아픈 사람에게 하나님은 가장 큰 위로가 된다. 누구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인다. 거기에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낫게 되면 그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주님을 영접한다.


병원뿐 아니라 무의촌 의료봉사(1989년부터)를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쉽고 절실하게 하나님을 만난다.


충남 서천 지역의 한 교회를 근거지 삼아 의료 봉사 활동을 나갔다. 중풍으로 1년 넘게 꼼짝 못하고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방문해달라는 전도사님의 부탁이 있었다. 할머니가 혼자 간호를 했기 때문에 목욕 한번 못했다고 했다. 우린 먼저 수염을 깎은 뒤 수술용 가위로 머리를 깎아드렸다. 물을 데워 물수건으로 몸을 씻기고 오래 누워 계셔서 생긴 욕창을 소독하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드렸다.


“아이구,너무 고마우이. 아는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내게 잘 해주는 거요?”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저희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요. 예수님은 저희보다 할아버지를 더 잘해 주실 거예요. 할아버지도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날,그 할머니가 삶은 밤 한 냄비를 들고 찾아오셨다.


“고마우이. 당신들이 말한 그거 있잖아. 예수라던가? 나도 믿을 테야.”

6개월만에 그 교회 전도사님을 만났다. 할아버지 임종예배를 드렸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천사가 보인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는 11년간 몽골 선교를 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연세친선병원을 세우는 데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터키 지진 현장에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카자흐스탄 태국 이라크 북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내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래서 ‘터지면 간다’는 별명도 얻었다. 그 많은 곳을 해외 단기선교나 해외 재난 봉사라는 이름으로 갔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였다.


태국에 갔을 때였다. 한 추장의 손녀가 1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찾아왔다. 탈수 때문에 링거를 놔줘야 했다. 그러나 그날 따라 챙겨간 링거액이 없었다. 물이라도 마시면 나을 터였지만 물이 안 넘어간다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대원들과 함께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부족의 추장이었지만 딸이 죽게 생겼으니 기도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믿음으로 다시 물을 먹여보라고 했다. 그러자 물이 안 넘어가서 못 먹겠다던 아이가 큰 대접으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추장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더 큰 감동은 터키에서 일어났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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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성회 위한 중보기도회… 22일 새문안교회서

[국민일보]|2006-06-21|29면 |05판 |문화 |뉴스 |454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독 어머니들의 금식·철야기도 모임인 ‘에스더 성회’를 위한 중보 기도회가 22일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서울 신문로1가 새문안교회에서 열린다.한국기독여성 모임(대표 주선애) 등이 주최하는 이번 기도회는 이재철(백주년기념교회) 목사,주선애(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김윤희(트리니티신학대학원) 교수 등이 강의하며 브리스길라 예배팀이 찬양을 인도한다.


이번 기도회에는 기독여성이면 누구나 참여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기도했던 에스더의 심정으로 나라와 민족,가정 회복,인류 평화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올해 에스더 성회는 ‘이 민족을 회복하소서’라는 주제로 10월24∼25일 새문안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기독여성모임 공동회장 홍관옥 목사는 “지금은 기도로 나라를 살리려는 한국의 에스더와 드보라,한나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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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웨이 목회자 세미나 26∼28일 개최

[국민일보]|2006-06-21|30면 |05판 |문화 |뉴스 |751자

“한국 교회 제2의 부흥을 위해서는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월간 목회(대표 박종구 목사)는 26∼28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제44회 크로스웨이 성경연구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한다. 목사 전도사 선교사 사모를 대상으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는 크로스웨이성경연구 1·2·3권 과정의 속성 코스로 진행된다. 1권에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란 주제로 성경의 배경에서부터 신·구약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2권과 3권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권별로 연구해 성경 전체의 흐름을 체계화한다. 고영민(백석대) 부총장,김대동(구미교회) 김수영(북아현교회) 목사,박종구 대표가 강사로 나선다.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 목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크로스웨이 성경연구는 지난 1985년 국내에 소개된 이래 20여년 동안 기독인들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총론편 구약편 신약편 생활편 기도편 등 5권 과정으로 이뤄져 있으며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가 직접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일반 성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천연색 그림과 슬라이드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35개 교단에서 2만여명의 목회자가 참여했고 7000여 교회 35만여명이 과정을 수료했다.


박종구 목사는 “크로스웨이는 성경에 대해 아는 것뿐만 아니라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도록 유도해 섬김의 신앙생활이 되게 한다”며 “많은 목회자가 참석해 은혜와 감동을 나누기 바란다”고 말했다(02-534∼7196).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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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재난 전문의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동수 교수 (8)

[국민일보]|2006-06-21|35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517자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직업에 맞는 은사를 주신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의사인 내게 당연히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셨다. 귀국하기 전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안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이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병 고치는 은사를 영혼 구원하는 데 사용하신다.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입원한 초등학교 5학년인 환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관절경 시술을 받기 위해 정형외과로 입원했지만 시술보다 약물치료가 우선돼야 했기 때문에 우리 소아과로 왔다. 이름은 정훈이. 관절염이 너무 심해 오른쪽 무릎이 ‘ㄱ’자로 굳어지고 있었다. 정훈이는 걸을 때도 절룩거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뼈와 척추까지 통증이 와서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너무 불쌍했다. 나는 병실 회진을 마치고 혼자 정훈이 병실로 들어갔다. 먼저 정훈이 엄마에게 교회 나가시느냐고 물었다. 말을 붙이기 위해 꺼낸 것이었다. 그런데 정훈이 엄마는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이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남편은 독실했지만 자신은 원래 종교가 없었다고 했다. 결혼 후에 자신이 안 나가게 되니 남편도 교회를 안 나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이가 이렇게 되고 보니 그것이 죄책감이 되어 늘 괴롭던 터였다고 했다.


나는 정훈이를 위해 안수기도를 좀 해주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의과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의학적 치료가 아닌 기도로 치료를 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여겼다. 정훈이에게 큰 기대는 말라고도 했다. 너무 아파하니까 연민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나는 정훈이가 가장 아파하는 골반 위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


저녁 회진 때였다. 정훈이가 병실에서 절뚝거리며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훈이는 “그 기도 받고 나서 안 아파요”라고 말했다. 나도 놀랐다.


정훈이는 곧 퇴원했다. 5년 후 인천의 모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정훈이를 다시 만났다. 정훈이가 보여준다며 내민 것은 ‘체력장 만점’ 표시가 있는 종이였다. 정훈이는 목사가 되겠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구원 받은 것처럼 사람들을 전도하고 싶어요.”

나는 홍역에 걸린 소연이란 아이도 잊을 수 없다. 홍역도 홍역이지만 폐렴까지 겹쳐 탈수가 심한 상태였다. 고난주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부활의 축복으로 치료해주시기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연이는 날마다 악화됐다. 급기야는 뇌염으로까지 발전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이런 경우 기도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도 소연이 상황을 엄마에게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 얘기를 했다. 소연이 엄마는 유년부 교사이기도 했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자 생계를 위해 보험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그후부터 교회에서 점차 멀어진 것이다. 소연이 엄마는 그 자리에서 회개했다. 그리고 같이 소연이를 위해 기도했다. 소연이 엄마가 눈물로 회개도 했으니 이번에도 소연이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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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재난 전문의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동수 교수 (7)

[국민일보]|2006-06-20|31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476자

한국에 온지 며칠 뒤 아내와 아이들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아래층에 사는 이웃이 개업 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터라 인사도 할 겸 해서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들렸다고 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사모님 뒤에 웬 남자 손님이 따라 나왔다고 했다. 사모님은 현관문을 반만 열고 얼굴만 내놓은 상태에서 “잘 다녀왔느냐? 미국생활은 어땠느냐”는 얘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아내가 손님이 있나 보다 싶어 가겠다고 했더니 사모님은 바래다주시겠다며 막무가내로 아내와 아이들을 내몰다시피해서 따라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집 현관문을 열자 급하게 뛰어들더니 “우리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경찰에 빨리 신고 좀 해줘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강도가 들었던 것이었다. 우리 가족까지 인질이 될 뻔한 것이다.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아래층 사모님 얘기는 이랬다. 남자 4명이 꽃배달을 왔다면서 들어와서 갑자기 강도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아내와 아이들이 인사를 간 것이었다. 처음에는 강도들이 우리 가족도 인질로 삼으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그냥 인사하려고 온 사람이라며 알아서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단다.


강도 만난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린다. 도착하자마자 미국에서 만난 하나님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그런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나는 입신을 해 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 80세인 어머니의 예수영접을 위해 기도하던 새벽이었다. 내 친구와 나는 순록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빛 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어떤 집에 들어갔다. 집안에는 커다란 TV처럼 생긴 것이 있었다. TV에서는 그 친구의 아버지가 지옥에서 쇠사슬에 묶여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핍박해서 지옥에 있는 거야”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 친구에게 눈을 돌리려는 순간 “김동수가 왜 벌써 천국에 왔어”라고 누군가 얘기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깨어난 나는 당장 그 친구에게 달려갔다. 친구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정말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이라고 했다.


그 길로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천국에 다녀왔다고,천국이 정말 아름답고,기쁨이 넘치는 곳이라고,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한참 설명했다. 친구 아버지의 얘기도 했다.


요동도 없이 들으시던 어머니 “그래. 그럼, 나도 예수님 믿어야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골다공증으로 대퇴골이 부러져 입원하셨을 때는 나를 부르시더니 봉투 하나를 건네시는 것이었다.


“헌금을 한번도 안했어. 헌금을 한번도 안하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치게 하시지.”

어머니는 여섯 달 후에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천국에 가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주께서 주신 긍휼과 병 고치는 능력은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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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재난 전문의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동수 교수 (6)

[국민일보]|2006-06-19|35면 |05판 |문화 |기획,연재 |1475자

1987년 12월이 됐는데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논문 하나를 끝내기는커녕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2년 안에 논문 4개를 낸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된 것이다.


“귀국하려면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미쁘신 하나님,그런 말씀 마세요. 이제 다시는 교회 안 가요.”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을 빙빙 돌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제 정신이 나갔구나 싶어했다. 분이 안 풀리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크리스마스 특송하는 날이었다. 나는 먼저 교회 간다고 해놓고 차를 몰고 무작정 나왔다. 나는 핸들을 돌려 교회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좌회전 깜빡이를 켠다는 것이 실수로 오디오에 꽂혀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쳐 테이프를 오디오 안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그때 헨델의 메시아가 흐르기 시작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눈물과 빗물로 앞이 전혀 안 보였지만 내 차는 어느 새 교회 앞에 와 있었다.


나는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란 각오로 3일 금식에 들어갔다. 금식 마지막날 교회를 갔을 때였다. 성경을 펼치자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진 하박국 3장 17절에서 19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 순간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셨다. “너 그 논문 못쓰더라도 기뻐하겠니?”

나는 깨달았다. 우선순위가 잘못됐구나. 논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나는 그때부터 실험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그만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때부터 실험이 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나는 요로감염증 환자의 소변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제대로 된 실험을 위해서는 요로감염증 환자의 소변이 적어도 100개 이상 필요했다. 하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실험실 인근 병원에서 매주 소변을 얻었으나 갈 때마다 하나 또는 두 개밖에는 얻을 수 없었다. 실험을 계속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복도에 있는 냉동고 청소를 하라고 시켰다. 그 냉동고는 선생님의 친구가 5년 전에 죽으면서 자기한테 기증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내가 냉동고 청소나 하려고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었다.


냉동고 안 얼음을 헤쳐 바구니에서 시험관을 꺼낸 나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곳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요로감염증 환자의 소변이 가득 차 있었다. 대략 20∼30년은 모았을 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이미 5년 전부터 이 냉동고를 준비해 오신 것이다. 할렐루야.


실험은 그때부터 속도가 붙어 한국에 올 때가 되자 정확히 논문 4편이 만들어졌다. 미국에 오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했던 바로 그대로였다.


이렇듯 놀라운 체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미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한국에도 계실까”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또 다른 시련을 낳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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