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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종교국 기자입니다.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를 거쳤습니다. 뻥선 티비, 뻥선 포토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경의 열매] 김석봉 (15) 줄잇는 손님들… 장사 설렘으로 밤잠 설쳐


2000년 즈음 오전 6시부터 5시간 동안 토스트 300여개를 팔았다. 석봉토스트의 토스트가 맛있다는 소문이 났고, 석봉토스트가 희망을 굽는 토스트맨으로 언론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줄을 섰다. 나는 토스트 노점상의 프로가 되기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그랬더니 체인점까지 내게 됐다.

나는 손님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몇 년 일하다 보니 눈썰미도 생겼다. 하루에 300명 안팎의 손님이 왔지만 여러 번 오는 손님은 대충 기억했다. 그래서 주문을 하기 전에 “햄토스트요?”라고 말하거나 채소의 양을 알아서 조절해 줬다. 자신을 알아주자 손님들은 더 좋아했다. 단골이 됐고, 새로운 손님을 데려왔다.

또 화장실을 자주 안 가려고 물 먹는 것도 조절했다. 물의 양은 소변의 양과 직결된다. 다섯 시간 동안 손님을 대하다 보면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갈증이 나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랬더니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하지만 갔다 오면 손님들은 가버렸다.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손님이 가고 안 가고를 떠나 서비스 정신이 부족한 것이었다. 나는 마시는 물의 양을 조절해 5시간 동안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가스가 떨어지면 가스통을 들고 뛰기도 했다. 토스트를 굽다가 가스가 떨어지면 모든 것이 올스톱 된다. 다행히 근처에 가스충전소가 있었다. 갈 때는 그런대로 들 만하지만 가스를 충전하면 보통 무게가 아니다. 당시는 20㎏ 가스통을 갖고 다녔다. 나중에는 5㎏ 가스통을 별도로 갖고 다녔다.

새로운 토스트 메뉴도 개발했다. 고객 한 분이 “오늘도 계란밖에 없습니까”라고 했다. 한 주 정도 있다가 또 오셔서 “계란토스트밖에 없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귀에 꽂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오시는 분도 많은데 이분들이 매일 계란토스트만 드시면 얼마나 질릴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계란을 기본으로, 야채토스트, 치즈토스트, 햄토스트, 이것저것 다 넣은 모듬토스트 이렇게 3가지 메뉴를 개발했다.

소스도 연구하고 개발했다. 처음에는 케첩만 사용했다. 설탕을 안 쓰려고 넣기 시작한 것이 케첩이었다. 외국에는 무슨 소스를 사용할까 알아봤더니 머스터드였다. 나는 케첩과 머스터드 두 개를 한꺼번에 사용했다. 속된 말로 맛이 죽였다. 그때 오뚜기에서 ‘허니 머스터드’를 출시했다. 이 제품이 비쌌지만 나는 과감히 사용했다.

그런 날도 있었다. 다음날 장사할 준비를 마치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안 왔다. 손님들과 만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토스트에 완전히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다. 

장사를 마무리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 어떤 분은 사인을 받고 싶어 했고, 어떤 분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어떤 이는 토스트 만드는 노하우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이 노하우를 모두 공개했다. ‘우리는 모두 맛있는 토스트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제법 거창한 이유를 만들었다. 또 언젠가는 사람들도 다 알 텐데 굳이 안 가르쳐준다고 하는 것도 우스웠다.

노하우를 알려 달라는 이들을 근처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정리를 마치고 그곳에 가면 보통 하루에 60∼70명이 기다렸다. 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앉고 가운데에 내 자리를 비워 놨다. 사람들은 체인점을 내게 해 달라고도 했다. 

2000년 체인점 10개를 내줬다. 그냥 이름만 쓰라고 했다. 체인점이 뭔지 잘 모를 때였다. 그러다 보니 토스트의 질, 위생관리 등이 안 됐다. 시행착오를 거쳐 2004년 8월 정식으로 프랜차이즈를 내주기 시작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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