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축구가 4강에 진출해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우리 집은 당시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5학년, 셋째가 유치원, 넷째가 임신 8개월이었다. 언론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나를 계속 다뤘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연간 1억을 버는 사나이, 토스트맨’. 하지만 나는 병들어 있었다. 위암이라고 했다.
연간 1억원을 벌었지만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집의 크기도 늘리지 못했다. 스낵카 말고 차도 없었다. 통장에 만원 한 장 없었다. 벌어서 생계만 유지하면 남는 것은 다 이웃을 위해 썼기 때문이었다.
“위암, 악성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을 나와서는 다섯 시간 정도 밖을 헤맸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위암이래. 빨리 수술하면 고칠 수 있대.”
그날 밤은 꼬박 새웠다. “죽으면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아이들은 고아원에 갈 텐데.”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내도 잠을 자지 못했다. 서로 등을 대고 누워, 눈물만 닦았다. 아내가 두 마디 했다. “혼자 죽지 마. 나 두고 혼자 떠나지 마.” 나는 속으로 외쳤다. “하나님, 보셨죠. 아내의 이야기 들으셨죠. 저 한 번만 살려주세요.”
어떻게든 살겠다고 결심하고 나는 수술대에 올라 위의 75%를 잘라냈다. 의사는 암세포가 임파선으로 번졌다며 하루에 여섯 끼 식사를 하고 항암제를 세 번 투여해야 한다고 했다. 4∼5년은 쉬라면서 재발하면 희망이 없다고 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버티는 것이 더 힘들었다. 정해진 양보다 쌀 한 톨만 더 먹어도 위에서 난리가 났다. 위급상황이 수시로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내가 수술하고 누워 있는데 아내도 누워 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넷째를 출산했기 때문이다. 통장은 비어 있지, 애들은 다 어리지, 형제가 있었지만 누구 하나 도움을 줄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났다. 돈이 없어 그냥 쉴 수만은 없었다. 나는 ‘어차피 죽을 것이면 일하다 죽자. 아이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남겨주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나가기로 했다.
“나는 토스트를 다시 굽겠다.” 나는 날마다 새벽 5시에 화장실에 기어가다시피 들어가 이렇게 세 번씩 외쳤다. 또 “나는 살아있어 기뻐. 나는 일하느라 바빠. 내 얼굴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니까 나는 예뻐”라고 외쳤다. 그럴 때마다 내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찌 보면 내가 이렇게 외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또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석봉아 너는 할 수 있어. 너라면 해낼 거야. 너는 꼭 해내고 말 거야.”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줬다. 기도도 했다. “하나님 저 지금 다리가 휘청거려 서 있기도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일 나갈 겁니다.” 실제 3주를 그렇게 외치고 차를 끌고 일을 나갔다.
항암제는 정말 독했다. 약 기운 때문에 일하다 쓰러지기도 했고 손님이 눈앞에 서 있는데도 왔는지 모른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내가 스낵카에 있는 것조차 몰랐다. 몸이 너무 힘들어 집에 가다가 2시간여를 차 속에 누워 있기도 했다. 아내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했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더는 나가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그러면서 기적을 맛봤다.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의사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첫째, 머리가 빠질 수 있습니다. 둘째, 살이 안 찔 겁니다. 셋째, 얼굴이 까매집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모두 거꾸로 됐다. 머리는 더 났고 얼굴은 하얘졌고 살도 올랐다.
죽다 살아난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고백과 지난날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그것이 ‘석봉 토스트, 연봉 1억 신화’였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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